267. 익산 미륵산 / 2022.6.12. / 산타나 산행이야기
200대명산 134차 익산 미륵산
(호남267차) 초여름 날씨
오늘의 야생화 개망초 싸리꽃
< 미륵산(彌勒山) > 익산시 금마면·삼기면·낭산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430m로, 원래 이름은 용화산이었으나, 미륵사가 지어진 후부터 미륵산이라고 부른다. 또한 봉우리가 사자의 형상처럼 생겼다고 해서 사자봉이라고도 한다. 마한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이곳에는 미륵산성이 축성되어 있는데, 성곽의 둘레가 1,822m이다.
미륵산성은 정상인 우제봉에서 동쪽으로 둘러 쌓았으며 성문에는 옹성을 설치하였다. 기름 한 말을 끓일 수 있을 정도의 큰 홈이 패인 등잔암 외에 4m의 높이에 구멍이 나 있는 투구바위, 안질에 좋다는 약수터, 사자암, 심곡사, 왕궁탑 등 명소와 볼거리가 많다.
등산코스는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발하여 약수터를 지나 정상에 이른 다음 사자암을 거쳐 구룡마을로 하산하는 코스와 구룡마을에서 출발하여 사자암에 올랐다가 다시 구룡마을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두 코스 모두 4시간 안에 산행을 마칠 수 있는 짧은 거리이다.
주변에는 익산 미륵사지 외에도 익산쌍릉, 익산 연동리 석불좌상(보물 45),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보물 44), 가람 이병기 생가 등 중요한 문화유적이 많고, 금마면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유명한 왕궁온천이 있다. 금마면, 왕궁면 등에 숙박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출처] 미륵산 [彌勒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미륵산 정상

전북과학고 주차장에서

해당지역 산악회의 산악 일정을 공지하네요
(좋아보입니다. 우리도 시급히 도입을...)

고속도로같은 산책로

계단도 넓게

본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있어요

잘 정비된 계단길

사자암의 모습

익산시내 조망

책바위라 명명함

바위틈에 자라는 상수리나무

치성이라 합니다. 정성껏 성을 쌓아서 치성인가?
< 익산 미륵산성 >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 있는 삼한시대의 석축산성(石築山城).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협축(夾築) 방식을 택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성 안에는 회랑도(回廊道)가 있다. 수구(水口) 남쪽의 동문에는 ㄷ자형의 옹성(甕城)을 둘렀다. 성벽이 직선을 이루는 곳에는 띠엄띠엄 성가퀴를 만들어 성을 수비하는 데 유리하도록 하였다. 동문 좌우에는 4개소, 남변에는 4개소, 서변에는 3개소, 북변에는 1개소의 성가퀴가 있다. 문지(門址)·수구문(水口門)·옹성·장대지(將臺址)·건물터가 남아 있으며, 성 안에서는 ‘금마저(金馬渚)’라는 명문이 있다.
마한의 여러 나라 중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성도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익산 미륵산성 [益山 彌勒山城]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정상부의 모습

미륵산 정상에서

하산길의 모습

주민들이 활용할수 있도록 잘 정비됨

개망초가 이산의 주인공

소림사라 합니다

까치수영도 꽃을 피우고

지난온 미륵산 모습

미륵사지 석탑의 재현모습
< 익산 미륵사지 석탑 >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 관련 불탑이다.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미륵삼존을 모시기 위해 창건된 백제 최대의 사찰로, 서원 금당 앞에 있는 이 석탑도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 석탑 중 제일 규모가 크고 오래된 탑이며, 목탑의 구조를 석탑으로 재현하였다. 무너져서 거의 절반 정도만 남은 탑을 2009년 해체·수리하다가 완전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같이 발견된 탑지에서 왕비가 639년(무왕 40)에 탑을 건립하면서 사리를 봉안했음이 확인되었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백제 최대 사찰이었던 미륵사지의 3원(三院) 가운데 서원의 금당 앞에 있는 탑으로 오랜 세월 동안 무너져 거의 절반 정도만 남았다. 현재 남아있는 국내 최대의 석탑이며 동시에 가장 오래된 백제의 석탑이기도 하다. 2009년 1월 해체수리 중에 초층 탑신 내부 심주에서 완전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사리장엄에는 금제사리호, 유리사리병, 청동합 6점, 은제관식 2점, 은제과대장식 2점, 금동덩이(金銅鋌) 3점, 금제 족집게 1점, 유리구슬 외 다수 유물이 있었다. 특히 이 가운데 기해(己亥)년명 탑지를 통해 당시 왕비가 639년(무왕 40)에 탑을 건립하면서 사리를 봉안했음이 확인되었다. [출처]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彌勒寺址石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