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부안 옥녀봉 / 2020.3.2. / 산타나 산행이야기
호남300산 223차 부안 옥녀봉
흐릿한 조망
오늘의 야생화 변산바람꽃 미선나무
<굴바위> 굴이 깊어 굴바위라 하였고, 호리병처럼 깊어 호암(壺岩)이라고도 한다.
변산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남옥녀봉[434.4m]의 남사면 중턱에 위치한다. 우동 저수지에서 왼쪽 계곡을 따라 회양재 고개를 향해 오르는 등산길의 오른쪽에 있다. 변산반도에는 해안가에서 해식 동굴을 볼 수 있고 내륙에서는 풍화 동굴을 관찰할 수 있다. 풍화 동굴은 암석의 절리면(節理面)을 따라 풍화가 진행되어 형성된 동굴인데 변산반도에는 대표적으로 울금 바위와 굴바위가 있다.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굴바위는 유문암(流紋巖)이라는 화산암이 풍화를 받아 형성된 천연 동굴이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의 절리면이 파쇄하면서 생성된 풍화 동굴로, 굴 입구에서 끝 지점까지 약 30m쯤 되며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장 높은 곳은 10m가 넘는다.
[출처] 굴바위[窟-]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남옥녀봉(바디재 근처)
청림미을 쇠쁠바위봉

변산바람꽃 할머니댁
왠지 쓸쓸함만이 묻어나네요

변산바람꽃을 보지 않고서 한해가 시작할수 있냐고 있냐고 있냐고

변산 아씨들

나무 뿌리뒤에 바람을 피하고서
<변산바람꽃>
높이는 10㎝이다. 산지의 햇볕이 잘 드는 습윤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땅속 덩이뿌리 맨 위에서 줄기와 꽃받침이 나오고, 꽃임은 꽃받침 안쪽의 수술과 섞여서 깔때기 모양으로 솟아오른다. 꽃받침 길이는 3~5㎝, 너비는 1~3㎝이다.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데, 보통 우산처럼 생긴 꽃받침 5장이 꽃잎과 수술을 떠받들 듯 받치고 있다. 처음에는 꽃받침 끝이 위로 향하다가, 차츰 밑으로 처지면서 느슨하게 허리를 뒤로 젖히는 듯한 모습으로 바뀐다. 꽃받침은 6~7장이다.
2월에서 3월 사이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에 쉽게 보기 어렵다. 꽃받침 위에서 수술들 속에 섞여 위로 치솟은 깔때기 모양의 꽃잎은 노랑 또는 녹색으로, 적게는 4개에서 많게는 10개가 넘게 달린다. 수술 수가 많고, 열매는 4월에 익는다.
한국 특산종으로, 학술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3년부터이다. 같은 해 전북대학교 교수 선병윤(宣炳崙)이 변산반도에서 채집해 한국 특산종으로 발표하였기 때문에, 학명도 발견지인 변산과 그의 이름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변산반도·마이산·지리산·한라산·설악산 등지에 자생한다.
[출처] 변산바람꽃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광내나물도 화려하게 봄을 시작하며

9부능선 낯선 산객에 놀란 선돌들이

옥녀봉 정상에 서서

보안면 일대
<우반동>
굴바위 일대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는 예전에 우반동(愚磻洞)이라 하여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아오고 기거하였다. 대표적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1435~1493],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저자 허균(許筠)[1569~1618], 실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1622~1673] 등을 들 수 있다. 허균이 부안에 왔을 때 굴바위에서 가까운 선계 폭포 위쪽 정사암(靜思庵)에서 소설 「홍길동전」을 완성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전란을 피해 기거하기 좋은 이른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하나가 부안 변산인데, 그 구체적인 장소가 바로 우동리 일대로 알려져 있다. 굴바위는 생활이 궁핍하여 유랑하다가 도적 떼가 된 사람들의 은신처이기도 하였다. 산수가 빼어나게 좋고 주위에 물산(物産)이 풍요로운 변산, 그 중에서도 굴바위 일대의 우동리는 사람들의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출처] 굴바위 [窟-]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암릉길 안전시설

특이한 바위 모습

산정부 미선나무도 꽃을 피우고

잘 가꿔진 정원처럼

굴바위앞 대불사모습

굴바위 가는길 대나무숲길

굴바위. 스케일이 중국 분위기
굴바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우동 저수지에서 왼쪽 계곡에 있는 대불사(大佛寺)를 지나 산길을 올라야 하고 오른쪽 산 중턱에서 만날 수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굴바위 천장에는 ‘옥정’ 또는 ‘참샘’이라 부르는 샘이 있다. 참샘에는 물을 떠 마실 수 있는 은(銀)으로 된 복지개[주발의 뚜껑]가 있었고, 이 복지개로 참샘의 약수를 떠 마시면 모든 병이 나았다고 한다. 특히 나병(癩病)에 특효가 있다고 하여 예전에는 나병 환자들이 많이 찾아와 병을 고쳤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줄포에 사는 일본인이 이 은복지개를 가져가 버렸고, 참샘의 약효 또한 없어졌다고 한다. 또 천장에 ‘아들 구멍’이 뚫려 있는데, 아들을 못 낳는 사람이 돌을 던져 맞히거나 구멍 안으로 넣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좁아져서 끝까지 들어갈 수 없는데, 바닥의 바위에 조용히 귀를 대고 들어 보면 냇물이 흐르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들리고, 이곳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부안군 변산면 해창으로 나온다고 전해지고 있다. 6·25 전쟁 때 변산을 근거지로 삼은 빨치산들이 이곳에서도 취사를 위해 불을 피웠다고 하니, 동굴 안쪽에 연기가 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멀리서 본 굴바위
그 후로 오랜 세월 잊혀 가던 굴바위가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 계기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이다. 굴바위는 극중 자영(수애)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촬영된 곳으로, 영화 속 무명(조승우)과 자영이 처음으로 교감하는 장소로 등장하였다. 외변산 채석강에 해식동굴이 있다면 내변산 굴바위는 풍화동굴이다. 동굴 밖 배경이 바다와 산이라는 것 외에 차이가 있다면 굴바위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방문객이 적다는 것 정도. 나만의 인생숏을 남기고 싶다면 지금 굴바위가 제격이다.

선계폭포 바위

나름 숨어있던 산새

30m 높이의 선계폭포
<선계폭포>
폭포 주변 풍경을 신선의 세계에 비유하여 선계 폭포(仙界瀑布)라고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1335~1408]가 한때 이곳에 머물면서 수련하였다고 하여 일명 성계 폭포라고도 부르지만 역사적 근거는 없다. 선계와 발음이 비슷하여 후대에 이성계의 전설이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우동제라는 저수지 위쪽에 있다.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의 암벽에 비가 내릴 때만 형성되는 약 60m 높이의 폭포이다. 선계 폭포 위쪽에는 분지상 지형(盆地狀地形)이 있으며 여기에 비가 올 때 물이 모이면 그 물이 벼랑 아래로 떨어지며 선계 폭포를 이룬다. 선계 폭포 위쪽의 평평한 분지 지형은 해발 고도 150m에서 200m 이내에 해당한다. 선계 폭포 부근에서 반계로를 따라 바드재[180m]를 넘어가면 내변산으로 이어지며, 지질학적으로는 이곳이 남북 방향으로 형성된 단층 지역에 해당한다.
[출처] 선계폭포 [仙界瀑布]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