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300산 화순 화학산
< 화학산(華鶴山) >
화순군 청풍면과 도암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세가 학이 날개를 펼쳐놓은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에서 산으로 서로 다른 방향을 잇는 지형적 특성과 산세가 험하여 동학혁명 당시 동학군이 주둔하였고 의병전쟁이나 6·25전쟁 때에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실제로 산에 오르면 밖에서 보기보다는 험하지 않고 수종은 거의 잡목이다. 주능선도 바위지대 없이 길게 남북으로 늘어져 있다. 산행은 청풍면 청룡리 내촌마을에서 시작한다. 마을 위쪽에 있는 큰 노송을 바라보며 오르다가 마을 다음 고개에서 오르면 물이 있는 빈터의 오른쪽을 지나서 산허리의 본 등산로로 접어들어 계속 걷다가 갈림길에서 오른쪽 골짜기로 올라간다.
정상에는 삼각점과 무덤 3기가 있으며 좁고 억새가 무성하여 주변 경관을 조망하기가 쉽지 않다.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 헬기장에서 바라보면 천태산과 금성산·용암산, 남서쪽으로 보림사가 있는 가지산과 국사봉, 나주호를 볼 수 있다.
정상에서 주능선을 따라 남쪽 끝에 있는 바람재는 장흥읍·나주시·화순읍의 갈림길이다. 하산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르던 길을 되짚어 가는 원점회귀형이 일반적이며 약간 떨어져 있는 백운리로 내려오는 길도 있다. 주능선을 타고 바람재까지 산행이 가능하나 교통편은 불편하다. 총 산행시간은 3시간 안팎이다.
[출처] 화학산 [華鶴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화학산 정상
청룡마을에 주차장이 준비되어 있다
청풍면의 진산 화학산
화학산 등산지도
청룡제
산새가 숨어있다
고깔제비꽃의 눈높이로 바라보는 세상
전답이 묵혀 있습니다
임도따라 걷다가 드디어 능선 산행길
산수유로 보여집니다.
단아한 산행길
가는잎그늘사초도 꽃을 피우고
<가는잎그늘사초>
여러해살이풀로 꽃줄기가 5cm 미만으로 짧고 옆에 달리는 이삭에 꽃이 1~3개 달리는 것이 특징적이다. 뿌리줄기는 짧아 모여나며 잎은 말려서 1mm 미만으로 실처럼 가늘다. 꽃차례는 4~5월에 5cm 미만의 꽃줄기를 내며 맨 위 이삭은 수꽃, 나머지 1~2개는 암꽃이다. 옆에 달리는 암꽃 이삭에 꽃은 1~3개 달린다. 비늘조각은 넓은 난형으로 갈색이며 과낭은 비늘조각보다 짧고 털이 있고 짧은 부리로 된다. [출처] 가는잎그늘사초 (국립공원공단 생물종정보 : 식물)

제2봉우리

멀리 화순의 산군들이 보입니다

산악바이크족들이 능선을 지나갑니다.

정상아래 임도주차장

정상입니다

고산 철쭉이 유명하여 매년 봄 철쭉제를 열고 있습니다

천태산, 개천산 방면

화학산에서 한컷

수령 100년은 넘었을 고산 철쭉들이 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화순군은 매년 화학산 고산 철쭉제를 진행한다(2023년도가 15회였다)
화학산 정상은 철쭉 군락지다. 4월 말부터 5월 초 철쭉꽃이 피어,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 개화한다. 보성 일림산이나 제암산 철쭉은 진분홍색을 띠지만 이곳은 선명한 연분홍빛이다.

약수터도 있고

보춘화

마을로 내려옵니다

주차장 도착

근처의 쌍봉사도 들려봅니다.
고려 무신집권 시기에 최충헌(1149년~1219년)에서 시작된 최씨 정권의 제3대 집정자인 최항(?~1257년)이 젊은 시절 '만전(萬全)'이라는 이름으로 쌍봉사에서 주지를 지낸 적이 있었다. 고려사 열전에 전하는 바로는 무뢰배 승려들을 모아다가 문도로 삼고 오직 재물을 늘리는 것만 일삼으니, 금과 비단을 엄청나게 모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만전은 환속 후에 이름을 최항으로 고치고 최씨 정권을 이어 받는다.

소실 이전의 쌍봉사 3층목탑
(1690년 이전의 건물로 알려지고 있다)

1984년 화재로 소실되어 1986년 복원했다합니다(안타깝게도 보물163호에서 지정 해제)

쌍봉사철감선사탑입니다.
쌍봉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부도. 높이 2.3m. 국보 제57호. 탑의 형태는 신라 석조부도의 일반형인 8각원당형이며 각 부분의 가구수법이 목조건축의 양식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기단부 위에 탑신과 옥개석이 놓여 있으며, 옥개 상면에는 원형의 찰주공만이 남아 있고 상륜부는 없어졌다.

<철감선사> 798(원성왕 14)∼868(경문왕 8). 신라 말기의 승려.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선승이다. 속성은 박씨(朴氏). 호는 쌍봉(雙峰). 도윤은 휘다. 경기도 시흥사람이다. 그의 어머니가 신이한 빛이 방안을 가득 채우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18세에 출가하여 귀신사(鬼神寺)에서 『화엄경』을 공부하였으나, 원돈(圓頓)을 가르치는 화엄이 심인(心印)을 전하는 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여 825년 당나라로 갔다.
도일(道一)의 제자 보원(普願)은 첫눈에 법기(法器)임을 알고 그에게 심인을 전한 뒤 그의 법인(法印)이 신라로 간다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847년(문성왕 9) 범일(梵日)과 함께 귀국하여 금강산에 머무르며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경문왕도 그때 그에게 귀의하였다.
868년 4월 18일 문인들을 모아 법을 널리 펼 것을 당부하고 나이 71세, 법랍 44세로 입적하였다. 시호는 철감선사(澈鑒禪師)이며, 탑호(塔號)는 징소(澄昭)이다. 죽을 때 오색과명이 입에서 나와 공중에 상서로운 상이 퍼져나갔다하여 서기만천철감국사(瑞氣滿天澈鑒國師)라고도 한다. [출처] 도윤 [道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