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호남300산 238차 강진 천태산

아이젠없이 떠난 산행
따스한 겨울산행

 

 

< 천태산 >

천태산(해발 549.4m)은 강진만을 굽어보고 있는 강진의 명산이다.

이곳은 산세가 깊으면서도 전망이 뛰어나고 수려한 계곡이 숨어 있는 곳이다. 정수사 좌측에 강진군에서 1995년에 시설한 사방댐이 있고 깊은 계곡이 있어 가뭄에도 수량이 풍부하여 여름철에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사방댐에서 임도를 따라가면 참나무, 편백 등이 잘 가꾸어진 초당림이 위치하고 있다.

천태산의 산행 코스는 원점회귀형으로 단순하며 정수사에서 출발하여 참나무로 뒤덮은 등산로를 따라 1시간 정도 산행을 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동북쪽 안부에 호남의 5대 명산의 하나로 꼽히는 장흥 천관산이 위용을 드러내고 남쪽으로 확 트인 장흥군 대덕읍내와 장흥만의 푸른 파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고 위험한 곳은 없으나 참나무류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 미끄러질 우려가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등산로에서 내려와 강진군에서 1994년에 시설한 임도를 통해서 정수사에 이르면 산행은 끝난다.

정수사는 천태종의 본사라고 일컬어지며 대웅전이 도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주변에 고려청자 가마터를 손쉽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는 길에 청자자료 박물관이 위치해 있어 역사기행을 겸한 산행코스로 권장할 만하다.

산로와 임도가 만나는 계곡에는 꽃무릇(상사화)이 붉게 물들어 산행객들을 반기고 계곡 상류 8부 능선에는 여름에도 얼음을 볼 수 있는 얼음골이 있다고 전한다.

[출처] 천태산(강진)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강진 방면에서의 등산로

 

정수사를 들머리로. 신라말 서기 800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정수사 뒤로 보이는 천태산 능선

 

북쪽사면에 눈이

 

새들이 바삐 움직인듯

 

천태산 정상부 이제 바다 조망이 터집니다

 

천태산 정상

 

천태산 정상표지석

 

천태산 정상에서

 

 

이웃해 있는 천관산

 

멀리 바다너머 고금도 약산도가 보이고

 

다소 투박한 소원들이 모여있고

 

상암에는 아무도 없는듯

 

임도에 후박나무 터널...

 

네마리의 사자가 받히고 있는 석탑. 입불이 모셔져있다

<정수사> 

정수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옛날에는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나 현재는 모두 없어지고 다만 대웅전과 요사채 그리고 응진당 등의 소규모 건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정수사의 원래의 명칭은 두 골짜기 계곡이 절 앞에서 합하여 흐른다고 하여 쌍계사라 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정수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신라 애장왕 원년(800)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그의 생존 연대와 맞지 않아 믿기 어렵다. 대웅전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인 공포식 맞배지붕으로 처마는 겹처마이고 양 박공 면에는 풍판을 설치하였으며, 바닥은 마루판으로 우물마루이고 후면 중앙 벽 쪽으로 불단이 설치되어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간결하며 조선 중기 이후의 건물로 추정된다.

[츨처] 정수사(강진)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조용히 흐르다 1년에 한번 솟구친다는 모수(어머니의 물)

< 모수(어머니의 물) 전설 >

이 물은 정수사 한켠에서 나오는 샘물로 오래전부터 어머니의 물이라는 명칭과 함께 마시면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샘물은 조용히 샘솟다가 1년에 한 번씩은 힘차게 솟구친다고 합니다

인근 주민들은 솟구쳐 흐르는 물을 마시면 무병장수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참여했던 한 승군이 솟구치는 물을 마시기 위해 밤낮없시 지켜보며 자내던 어느날 보름날 밤 샘물이 콸콸 솟구쳐 승군이 그 물을 마시려 했으나 샘위쪽에서 호랑이가 '어흥' 하고 나타나 못먹게 했다는 신비스런 물입니다. 이 샘물은 조선시대 승군은물론 고려시대 도공들도 마시며 건강을 기원했던 생명의 물이기도 합니다.

정수사의 삶을 품고 꿈을 품고 온 생명의 근원이 되고 있는 여기 전설의 샘물을 모수(어머니의 물)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 모수를 20m 끌어들여 여기에서 편리하게 먹도록 했습니다 

 

임진왜란 의병장 염걸 장군 전승 기적비와 선교도총 부종수교 운계천기대사 의적비가 세워져 있다

<의병장 염걸장군>

염걸 장군은 칠량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글재주가 있고 힘이 몹시 셌다고 전한다.

자라면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뛰어난 솜씨를 가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인 1592년(선조 25) 9월 왜병이 구십포(九十浦)로 쳐들어 오자 형제와 아들이 합심하여 의병을 일으켜 싸웠다.

여기에서 허수아비 수백개를 만들고 포고문(布告文)을 발사하여 왜적이 이를 보고 후퇴하자 정수사(淨水寺)에 숨어 있다가 크게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
다시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싸움에 힘써 의병장이 되었고, 몰운대 전투에서 다시 큰 공을 세워 수문장이 되었다.

그뒤 얼마 되지 않아 거제도해전에서 백병전을 펴다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고 그의 형제인 염서, 염경, 외아들 염홍립도 모두 전사하였다. 염걸 장군은 사후 선조 때 사헌대부 병조판서로 추증되었다.
[출처]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정수사 도조사陶祖祠 고려시대 청자를 굽던 옛 도공들의 위패를 모셨다. 도공들이 가마에 들기전 마음을 다잡기 위해 찾았다는 정수사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호남300산 239차 정읍 임실 묵방산

겨울산행
봄은 그렇게 준비중이고

 
 

< 묵방산 (墨方山) >

높이 538m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과 임실군 운암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묵방산은 호남정맥의 산줄기인데 북쪽으로는 오봉산~초당골~경각산이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성옥산~왕자산~구절재~고당산이 이어진다.
국사봉·오봉산·나래산·회문산 등과 함께 옥정호(玉井湖)라고도 불리는 갈담저수지(만수면적 26.5㎢)를 둘러싸고 있다. 산으로 오르는 능선 곳곳에서 옥정호가 내려다보이지만, 정상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전망이 좋지 않은 편이다.
전라북도 남부를 흐르는 동진강(東津江, 44.7km)이 바로 묵방산 남쪽 기슭에서 발원한다고 알려져 있다. 산 아래 여우치(如牛峙, 284m)라는 고개에는 여우치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출처] 묵방산 [墨方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묵방산 정상

호남정맥이 지나가는 구간중 옥정호 서편에 위치한다

 

종산리에서 묵방산 방면

 

산길의 아기자기함

 

중간 고갯길의 정자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짐승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길

 

묵방산에 올라

 

멀리 회문산과 장군봉이 보이고

 

돌아오는 계곡길

 

산골마을엔 폭설이

 

동진강 44.7km 발원지가 묵방산이라 했다

 

지네명당으로 유명한 김명관 고택(전북 정읍시 오공리 814)

김명관(1755~1822)은 영조·정조·순조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17세 때 이 집을 짓기 시작하여 10년 만에 완공하였다.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은 꿈에 도깨비들이 나타나 점지해주었다고 한다. 도깨비들이 땅을 방망이로 치며 이곳에 집을 지으면 천섬지기 부자가 된다고 장담하였다고 한다. 과연 이집에 살면서부터 가을에 수확하는 벼가 1천200섬이 넘는 부자가 되었다.

집 바로 뒤의 산은 창하산(150m)이다. 낮지만 횡으로 길쭉하게 뻗어 있다. 마디마디 여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는데 그 모습이 지네의 몸통과 닮았다. 아래에는 지네 다리처럼 작은 능선들이 여러 개 있다. 지네의 머리에 해당하는 맥은 안채 중앙으로 이어져 왔다. 이곳 지명을 지네 오(蜈), 지네 공(蚣)자를 써서 오공리라 한 이유다.

 

지네와 닭은 서로 상극 관계다. 닭은 지네를 보면 쫓아가 발로 밟고 부리로 쪼아서 먹는다. 그러나 지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독을 뿜어 닭을 죽이기도 한다. 옛날 지네를 잡기 위해 항아리에 닭 뼈를 넣어두면 지네들이 냄새를 맡고 모여들었다. 지네의 밥이 닭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네 터에 닭이 있거나, 닭 터에 지네가 있어야 좋다. 서로를 경계해야하므로 기가 바짝 올라 발복이 제대로 되기 때문이다. [출처] : 중부일보 - 정경연의 풍수기행

 

대문에서 집 밖을 보면 들 건너 정면으로 귀인봉이 보인다. 이 집의 안산으로 닭을 뜻하는 독계봉(獨鷄峰)이다. 마치 늠름한 수탉이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고 있는 모습처럼 생겼다. 닭과 지네가 가까이 있으면 위험하다. 천적인 둘 사이에 목숨을 건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곳은 집과 독계봉 사이에 동진강이 흘러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서로 견제만 할 뿐 피해를 줄 수 없으므로 안전하다.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호남300산  240,241,242차 담양 만덕산 수양산 월봉산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 만덕산(山) >

높이 575m이다.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운암리·문학리·용대리에 걸쳐 솟아 있다. 만인에게 덕을 베푸는 산이라는 뜻으로 만덕산(萬德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에는 산신제단·신선바위·물통구리전망대·신선화장실바위·고깔바위 등이 있으며, 주봉우리인 할미봉(할미바위)에 오르면 광주의 무등산을 비롯하여 불태산·병풍산·추월산·백아산·모후산이 펼쳐진다. 산 아래로는 담양 창평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덕산과 등산로를 따라 이어져 있는 산과 고개들은 수양산·국수봉·노가리재·방아재 등으로, 만덕산을 지나 수양산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호남정맥중간지점(영취산에서 백운산까지 이어지는 462km 구간의 중간지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만덕산 아래의 마을들은 만덕산에서 흐르는 석간수를 식수로 사용하여 예로부터 병 없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산 중턱에 천마폭포 또는 물통구리(물통거리)라 부르는 계곡물이 약효가 있다 하여 병을 앓는 환자들이 모여들었으나 객지 병자들의 출입을 싫어하는 주민들에 의하여 폐쇄되었다고 한다. [출처] 만덕산 [萬德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만덕산 할미봉 정상

 

문재에서 산행시작

능선에 올라서서 오늘가야할 능선들

전망좋은 집 발견

멀리 무등산이 보이고 반대편 월봉산 능선

이젠 시그널은 노란색이 대세인듯

 

만덕산 할미봉 인증샷

 

수양산과 멀리 무등산 능선

 

여긴 백호우로 등산로를 정비한듯

 

호남정맥 중간지점

 

하늘은 파랗게

 

표지석 없는 수양산에 서서

 

입석마을 입석고개를 넘으며

<선돌고개> 담양군 입석리와 운암리 사이의 고개로 입석리는 다른 산촌과 달리 바위가 곳곳에 수직으로 서 있는 것이 많아, 마을을 지켜주는 석신으로 모시고 제를 지내왔으며, 마을 이름을 선돌이라고 불렀다가 한자화하여 지금은 입석이라고 부른다. 마을의 북쪽과 남쪽에 각각 두개의 선돌이 있다.

 

건너에 옹성산이 보인다

 

국수봉에 안착

 

겨울산행의 풍경은 요정도...

 

넓게 정비된 호남정맥길

 

월봉산 위엔 전망대가...

 

1954년에 세워진 월봉산 정상석. 상단부가 깨졌는지 글씨가 위에 쓰여있다

<월봉산(山) >

담양군의 창평면 용수리와 대덕면 운암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454m). 호남정맥 만덕산 서편을 마주보고 있으며, 북서쪽으로 창평면 소재지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남서쪽 기슭에 상월정이 있다. 『여지도서』에 "월봉산은 관아 동쪽 1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월봉(月峰)은 경사가 급한 봉우리를 일컫는다. 상월정(上月亭)은 용수리 산 대자암(大慈庵) 터에 1457년 김자수(金自修)가 지었다. [출처] 월봉산(月峰山)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 12.)

 

대덕면 들판

 

월봉산 계곡이 예사롭지 않음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호남300산  244차 진도 조도 신금산(神禽山)

암릉길의 조망산행
오늘의 야생화 동백

 

조도면은 진도군 7개 면 중의 한 면이며, 154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유인도는 35개, 무인도는 119개가 있다. 우리나라의 읍·면 중에서 섬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조도는 건설부고시 제478호에 의해 198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상조도 돈대산 전망대(도리산 전망대라고 한다)에 오르면 조도군도의 섬들이 마치 새떼처럼 보여 조도를 한국의 하롱베이라고도 부른다.

 

하조도의 돈대산(敦大峰·271m)과 상조도의 돈대산은 돈대(墩臺)에서 유래되었다. 돈대시설은 신금산(神禽山·238m)에도 존재하였다고 한다. 돈대(墩臺)는 일종의 성곽 시설의 하나로,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을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해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신금산 정상

 

하조도 등산지도

 

상록수길의 평화로운 산행길

 

춘란도 봄을 준비중이다

 

거북바위 모습이 압권이다

 

신금산 정상에 서서

 

어제의 산행지 돈대산과 조도면소재지

 

한국의 하롱베이라는 조도군도. 그래서인지 조도는 옛날부터 바다에 '고기 반, 물 반'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어족자원이 풍부했다. 조도는 진도의 외해에 속한 섬이라 오랫동안 고기잡이 어선이 전국적으로 가장 많았다. 해방 후 조도에 닻배(닻으로 고정한 배에서 그물을 이용한 어선) 32척, 투망 51척, 중선(중형 어선) 10척이 있었는데, 모두 100여 척 정도 있었다고 한다.

 

신금산 하산길의 모습

 

부처손도 봄을 준비중이다

<부처손>

건조한 바위 겉에서 자생하는 양치식물로 부처손은 불사초, 장생불사초, 회양초(), 권백 등의 다른 이름이 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시켜줌과 동시에 다른 곳으로의 전이를 막아주고, 그 자체를 소멸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출처] 부처손 (우수 식재료 디렉토리)

 

거북바위의 턱밑. 정면에서눈 코끼리바위라해도 될듯

 

귀여운 콩짜개덩굴

 

하조도항과 상조도군도(2006년 건교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조도대교가 보인다). 

 

서쪽으로 갈수록 동백군락지 입니다

 

동배꽃도 피고

 

동백나무숲

 

가거도 분위기나는 등대쪽 바위

 

사람형상의 바위도 찾아보고(미국의 모 대통령 모습같디도)

 

통신타워와 등대

 

<하조도등대>

등탑의 높이 12m이다. 등고는 평균해수면으로부터 48m에 이른다. 등질은 섬백광 10초 1섬광이다. 우리나라 서남해 연안 해역에서 가장 조류가 센 장죽수도(長竹水道)의 중앙에 있다. 1909년 2월 1일 조선총독부 체신국의 관리 아래 처음 등에 불을 켰다. 여수·부산-목포·군산·인천 사이를 왕래하는 1만 톤급 이하 선박의 주요 뱃길이 되는 장죽수도가 있는 곳이 하조도라 그 북동쪽 끝에 광력(光力)이 높은 유인 등대를 설치하게 되었다.
1945년 12월, 미군정청 운수부 해사국에 소속되었다. 1955년 12월, 목포지방해무청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1977년 12월, 목포지방해운항만청에 속하게 되었다. 1988년 8월, 목포지방해운항만청 항로표지관리사무소로 명칭이 바뀌었다. 1997년 5월, 목포지방해양수산청 하조도항로표지관리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출처] 하조도 등대 [下鳥島燈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영국출신의 바실홀 함장이 상조도 도리산 전망대(당시 산성)에서 조도 군도를 보고 세상의 극치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지금부터 200년 전인 1816년. 청나라 위해(威海)에 갔다가 제 나라로 돌아가던 영국 함대 3척이 이곳을 잠시 들른 적이 있다. 함대 중 리라호 선장은 지금의 상조도 도리산 전망대가 서 있는 곳에 올라 주변을 살폈다고 한다. 작은 섬들이 마치 새가 모여 있듯이 곳곳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감탄한 그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 보고서를 써서 이곳이 동양에서 항구 건설에 가장 좋은 후보지라고 극찬했다.

조도란 이름이 붙은 사연도 새가 모여 앉아 있는 모양새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가 남긴 <항해기>(1818년)엔 이런 구절이 있다. “산마루에서 주위를 바라보니 섬들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섬들을 세어보려 애를 썼으나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20개는 되는 듯했다. 경치는 황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조도에 사흘간 머물면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조도 말과 생활습관을 기록해뒀다. 자기네들 마음대로 섬의 이름도 붙였다. 하조도는 앰허스트섬, 상조도는 몬트럴섬, 외병도는 샴록섬, 내병도는 지스틀섬 등이다.

이처럼 조도는 일찍부터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탄 섬이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70년쯤 지난 1885년,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뒤엔 군사적 요충지로 조도를 중심으로 한 진도 일대를 정식으로 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만일 당시 조선 왕실이 영국에 진도 일대를 내주었다면, 지금의 홍콩이나 마카오와 같은 운명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출처] 이재언의 섬 조도

 

 

손가락바위가 조도대교 부근에서 보면 임신한 여인상이라고..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호남300산  245차 영광 봉대산

봄바람속에서 꽃들이 피기 시작하고
오늘의 야생화 산자고 노루귀

 

<봉대산>

봉수대는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烽]을 피워, 낮에는 연기[燧]를 올려 외적이 침입하거나 난리가 일어났을 때에 나라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는 수단으로써 봉수(봉대)가 있는 산을 일컬어 봉대산이라 이름지었다.

경국대전이나 만기요람에 의하면 전국에 5개의 직봉경로를 두었는데 그중 봉대산은 5번째의 봉수로로 순천돌산도를 기점으로 경상우도와 전라우도의 연안대를 경계감시하는 임무를 띤 봉수로이며 특히 고려 성종이래 줄곧 조세창을 두고 있는 법성포가 조선 중종 때는 국중 최대의 조창이었기 때문에 홍농산 봉화대(현 봉대산)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봉화대였다.

촛대봉, 마당바위, 질마재, 금정산 등의 부드러운 봉우리를 지닌 봉대산은 매년 초에 해맞이 축제가 개최되어 산악회원 뿐만 아니라 마을주민들이 함께하는 장소로써 봉대산 정상에 오르면 전방에는 망망대해인 서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낙조와 풍광이 가히 환상적이며 산세가 아름다운 수림을 걷는 맛 또한 일품으로 봉대산 등반은 어느산에서도 느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만 하다.

봉수가 있었던 봉수산

 

상하리 삼거리에서 산행을 시작

 

전형적인 우리의 야산길

 

산자고가 고개를 내밀고

 

높이에 비해 의외로 바위산의 모습

 

법성포 모습과 멀리 구수산 능선이

 

봉대산 작은봉에서

 

홍농의 진산 봉대산에 서서

 

 

홍농읍내 모습

 

활짝핀 산자고 자애로운 시어머니의 전설을 간진한 산자고 꽃말은 봄처녀

 

봄까지꽃도 피어나고

 

해맞이 장소인 봉대정

 

금정암에서 김삿갓이 하루묵고 썼다는 시

昨夜一宿靑天  足豆時生白髮

어제 밤 푸른 하늘에서 지내고 한발 한발 내려오니 흰 머리카락이 돋는 것 같구나

 

봉대산 등산로

 

흰노루귀도 수줍게 피고

 

길마가지도 피고

<길마가지나무>

수피는 회갈색으로 오래될수록 세로로 갈라진다. 잎은 타원형으로 양면에 거친 털이 있고, 가지에 마주나게 달린다. 꽃은 양성화로 2~4월에 잎겨드랑이에 2개씩 달리며, 꽃은 연분홍빛 흰색으로 피었다가 점차 노랗게 변한다. 열매는 장과로 5~6월에 붉게 익는다. [출처] 길마가지나무 (국립공원공단 생물종정보 : 식물)

 

평온한 등산로

 

홍농초등학교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호남300산  247차 신안 임자 불갑산

교량 개통전 서둘러 가본 산행
오늘의 야생화 산자고 노루귀

 

<임자도>

임자도는 우리나라 서해 남단에 위치한 다도해 신안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으로 바다 건너 지도읍, 서쪽으로는 서해에 접해 있고 남으로는 바다 건너 자은면과 북으로는 바다 건너 영광군 낙월면과 이웃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2km에 걸쳐 펼쳐져 있는 가장 긴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명사 30리 대광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어 매년 4월이면 섬에서 즐기는 3백만 송이 대향연을 연출하는 튤립축제와 해변에서 승마체험과 갯고랑에서 카약을 타 볼 수 있으며 주요 특산물은 임자 3미(민어, 병어, 새우젓) 유명하다.

수려한 풍경과 먹을거리, 지역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매력적인 테마여행지이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불갑산 정상에 서서

 

1주일뒤 교량의 개통 예정으로 마지막이 될 선박으로의 여행을 준비해 본다

 

시간관계상 중간 고갯길에서 산행을 시작

예전에 '임자도 처녀들은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간다'는 말이 있었다. 임자도에 그만큼 모래가 많아서 바람에 날려 입에 들어오는 모래가 많았다는 소리이다. 임자도 사람들은 입으로 들어오는 모래뿐만 아니라 머리나 눈썹에 쌓이는 모래를 평생 짐처럼 이고 다녀야 했다.

 

대둔산 불갑산 등의 산행안내도

 

첫 몇걸음의 발걸음을 반기는 분홍노루귀

 

여기는 산자고의 이미 나라

 

생강나무도 뒤처지지 않게 꽃을 피우고

 

해맑은 노루귀 가족

 

피부색은 다르지만 사이좋게

 

 

임자도 불갑산에 서서

대둔산 자락 이흑암리는 조선 후기 매화 그림으로 유명한 조희룡의 유배지가 있다(추사의 제자이기도 하다)

유배 초기에는 섬의 낯선 환경 속에서 공포를 느끼기도 했지만, 곧 생활에 순응하면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는다. 특이한 것은 짧은 유배 기간에 그의 대표작 대부분이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유배 처소에 ‘만 마리 갈매기가 우는 집’이라는 뜻의 ‘만구음관(萬鷗音觀)’이란 편액을 붙이고 그 속에 칩거하면서 집필과 작품활동을 계속했다고 한다.

 

멀리 대둔산 능선들

 

사스레피꽃이 피면은 향기가 별로...

 

전장포항의 새우조형물

국내 새우젓의 최대 생산지인 전장포(국내 생산량의 60~70%)는 마을 앞 모래사장이 평평한 마당 같이 생겼다 하여 장불이라 불리어 오다가 일제 강점기 때 전장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1860년 경 지도에 거주하던 박와갈이 건너와 새우잡이를 한 것이 시초가 되어 현재는 전국 최대의 새우젓 생산지로 자리매김 함

 

전장포 아리랑과 토굴의 사연

 

겨울이라 한산해진 전장포항. 도로 개통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런지

 

연인 갈매기의 다정한 모습

 

대파 가격도 비싼데 대파특구인 이곳에선 대파작업이 한창이다

 

4.99km의 임자대교 3.19(금) 정식 개통한다고...

 

새우젓갈을 보관하던 전장포 토굴

전장포 뒤편 솔개산에 길이 100m, 높이 24m, 너비 3.5m의 토굴 4개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새우를 숙성시켜 최고 품질의 새우젓을 생산하게 되었다고 함

 

 

모래의 섬 임자도의 백미 대광해수욕장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호남300산 248차 신안 임자 대둔산(大屯山)

미세먼지에 아쉬운 조망속 봄산행
오늘의 야생화 산자고 흰노루귀 현호색

<임자도>

임자도라는 명칭은 섬이 들깨알[荏;들깨 임]처럼 작고 섬 주위에 아들[子]같이 작은 섬이 많은 데서 유래하였다. 원래 대둔산 및 삼학산(三鶴山)·불갑산(佛甲山)·조무산(釣舞山) 등 여러 산을 중심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연안조류(沿岸潮流)와 파랑(波浪) 등에 의해 산지가 침식되고, 흘러내린 토사가 퇴적하여 하나의 섬을 이루게 되었다

1711년(숙종 37) 전라우수영 소속의 수군(水軍) 기지인 임자진(荏子鎭)이 설치되어 수군첨절제사가 목장을 감독하던 감목관(監牧官)을 겸임하였다

 

< 신안 대둔산성지 >

신안군 임자면 이흑암리()에 있는 옛 성터.

대둔산성은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임자면 이흑암리()에 성터가 남아있다. 성터는 지도(), 재원도(), 임자도 진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임자진지》에는 봉수대가 표기되어 있다. 산성의 규모는 둘레 100m, 높이 1~1.5m, 폭 2.5~3m 정도로 추정되나 현재 대부분이 훼손된 상태이다. 성벽의 형태로 보아 조선후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신안 대둔산성지[新安大屯山城地]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대둔산 정상 표지판

 

사정상 부동재에서 산행시작

 

보춘화도 아젠 기지개를

 

자애로운 시어머니 전설의 산자고의 천국인 대둔산

<산자고>

여러해살이풀로 인경이나 종자로 번식한다. 포기 전체를 식용한다. 한방에서는 비늘줄기를 종기를 없애고 종양을 치료하는 데 쓴다. 한국에서는 제주도 · 무등산 · 백양사를 비롯한 중부이남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일본 ·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산자고(국립공원공단 생물종정보 : 식물)

 

현호색도 뒤지지 않고

 

부드러운 육산의 산행길

 

개별꽃도 봄편대 비행에 출격준비중

 

콩자개덩굴도 포자를 카우며 새봄을 줔비하고

 

흰노루귀들이 날좀 봐주세요 하며 바쁜 산객을 부른다

 

분홍노루귀는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대둔산 정상에서

 

가는잎그늘사초도 꽃을 피우고

<가는잎그늘사초>

여러해살이풀로 꽃줄기가 5cm 미만으로 짧고 옆에 달리는 이삭에 꽃이 1~3개 달리는 것이 특징적이다. 뿌리줄기는 짧아 모여나며 잎은 말려서 1mm 미만으로 실처럼 가늘다. 꽃차례는 4~5월에 5cm 미만의 꽃줄기를 내며 맨 위 이삭은 수꽃, 나머지 1~2개는 암꽃이다. 옆에 달리는 암꽃 이삭에 꽃은 1~3개 달린다. 비늘조각은 넓은 난형으로 갈색이며 과낭은 비늘조각보다 짧고 털이 있고 짧은 부리로 된다. [출처] 가는잎그늘사초(국립공원공단 생물종정보 : 식물)

 

정상부 헬기장에는 귀한 할미꽃이

 

분홍빛 산자고도

 

천냥금 종류도 열매를..

 

은골해변 모래섬 임자도는 어디든 해수욕장

 

진리항엔 목재데크가 관람객들을 유혹한다

 

1주일뒤 임자대교에 임무를 넘기고 떠나야하는 임자농협2호(임자대교가 완성대어 1주일 후 개통한다고 합니다)

 

임자대교가 선박으로부터 인계인수 절차를 밟고있다

 

용난굴

먼 옛날 중국에서 청자를 싣고 항해하던 보물선이 침몰하자, 선원들은 살려고 침몰한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헤엄을 쳐 가까스로 도착한 곳이, 바로 임자도 어머리해변의 바위산 이었다고 하는데, 겨우 목숨을 구한 선원들은 자신들이 타고온 배가 침몰한 바다를 바라보며 가족들을 그리워 하였다 합니다.

그런데 선원들이 도착한 바위 속에는 천년묵은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할 날만 기다리며 살고 있었으며, 이러한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할려면 누군가 이무기가 갇혀 있는 바위에 눈물을 흘려야 용이되어 승천할 수 있었는데, 마침 선장이 바위에 올라가 고향을 그리며 울다보니 눈물이 바위로 떨어졌으며

그 순간 바위는 큰 소리를 내며 부셔져 바위 속에 있던 이무기가 용이되어 승천하게 되었으며, 이후 용이 하늘로 승천한 곳이라 하여 용난굴이라 하였으며, 용난굴 옆에 서있는 바위를 망향석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러한 용난굴과 망향석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드론 이미지 ( 높이 5m, 폭 2m 길이 50m 정도 규모의 용난굴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곳)

 

임금님에 진상했다는 민어 조형물

<민어> 임자도의 민어는 예전 궁으로 보내졌던 귀한 진상품으로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삼복더위를 달랠 복달 음식 중 그 으뜸이 민어탕이고, 다음이 도미탕이고, 세번째가 보신탕이라 했다. 그러나 백성 민(民)자가 들어간 물고기지만 주로 양반네들 차지였다. 서민들은 구경하기도 쉽지 않았던 귀한 생선이었다.

( 옛날에는 민어가 흔했기 때문에 서민과 가장 가까운 대중어(大衆魚)였고"민초들의 물고기"라 해서 민어(民魚)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호남300산  251차 보성 활성산

흐리지만 폭염의 날씨
오늘의 야생화 일월비비추 엉컹퀴

 

< 활성산(山) >

 보성군의 보성읍 봉산리와 웅치면 봉산리 · 유산리, 회천면 영천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465m). 과거 활성이라는 성이 있어서 활성산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위에 성터가 있는데, 군사들이 무술을 연습했다고 전한다.

제암산과 일림산을 거쳐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구간에 위치하며 풍수설에 의하면 백호의 등인 활성산 줄기가 봇재를 이루어 곱게 돌아 안산을 이룬다 한다. 활성산성은 임진왜란 다음해인 1593년 연해지대의 경비, 요새지, 훈련장,경마장으로 활용하였다 한다

 

활성산 정상

 

녹차밭은 개점 휴업중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코로나의 영향으로 손님이 없네요

 

계단도 새롭게 만들어 놓았는데

 

녹차박물관

 

리마인드웨딩 포토존

 

일월비비추가 오늘의 주인공

 

가족들과 조용히 올만한 곳이다

 

전망대도 멋지고

 

녹차밭 모습

 

호젓한 산행길

 

턱골고갯길에 들어선다. 득음소리길이란 표시도 있다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와 괘상리를 경계로 옛날에 턱골고개에서 한국차박물관 방향으로 산림 골짜기에 기동마을이 있었으나 큰 불이 나서 마을이 없어졌다고 한다. 봉우리가 둥그런 형국으로 산 꼭대기 주변으로 400m쯤 되는 옛성터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는데 큰 구실을 하였다는 몽중산과 군사들이 진을 쳤다는 진돗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보부상길

옛날에 회진면 득량만의 싱싱한 수산물을 가지고 회진면과 보성읍의 경계인 봇재와 이곳 턱골고개를 지나 보성읍 봉산리 온수동과 보성읍 소재지까지 수산물을 이동하였다고 한다

 

산성 남문

 

편백나무숲이 원시림의 모습을 보여준다

 

 

호남정맥의 일부이기도 한 활성산 정상에서

 

정상부엔 나무무덤이

1968년도에 80ha 면적에 심었던 편백과 삼나무숯이 2012년 8월 28일 "볼라벤" 태풍으로 넘어지고 부러지는 피해가 발생하여 활성산성의 활과 죽은 나무의 애환을 달래기 위해 이 형상의 조형물과 산림욕대 등을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나비들도 쉼을

 

녹차밭이 풀밭이네요

 

녹찻잎 조형물이 봇재에

 

728x90
반응형
LIS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