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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1차(호남300산 217차)

무주 거창의 삼봉산
조망이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 삼봉산(三峰山) >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고도 : 1,254m). 

덕유산에서 산줄기가 북동쪽으로 이어져 삼봉산이 되며 북동쪽에 대덕산이 있다.

산 남사면에 150여 년 전에 창건되었다고 알려진 금봉암이 있다. 삼봉산은 덕유산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있어 덕유 원봉(元峰)이라고 한다.
『거창군사』에 의하면 거창의 진산으로 봉우리는 3개이며, 가뭄이 들 때면 삼봉산 금봉암에 있는 용머리 바위에서 기우제를 올렸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거창)에 "삼봉산(三峰山)은 현 북쪽에 있다."라고 하여 일찍부터 거창의 중요한 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거창)에도 "관아의 북쪽 50리에 있다. 무주부 대덕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온 산줄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거창)에 우두치 서쪽, 무주와의 경계에 삼봉산이 묘사된 것을 비롯해 『조선지도』(거창), 『대동여지도』(17첩 3면) 등에 부의 북쪽 경계에 산이 표기되어 있다.

산 지명은 봉우리가 3개인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출처] 삼봉산 [三峰山, Sambongsan]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 2011. 12.)

 

덕유삼봉산이란 표지석과 함께 여기서 부터 덕유산으로 불려진다고 한다

 

삼봉산 산행개념도(최단코스)

 

금봉암 주차장에서 시작합니다

 

아홉구비 도로가 여기에...

 

삼봉산 암봉들을 배경으로 돌탑을 쌓아 놓았네요

 

금봉암. 150여년전 해인사 여신도가 백일기도 끝에 점지받은 자리에 세운 암자로 금빛 찬란한 봉황이 기도처를 세번 왕복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봉암>

금봉암(金鳳庵)은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남도 거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삼봉산[1,254m]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삼봉산은 세 개의 봉우리가 연꽃 모양으로 되어 있어 ‘삼봉산(三峰山)’이라 한다고도 하며, 세 봉우리가 봉황의 모습이라 하여 ‘삼봉산(三鳳山)’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백두 대간에 속하는 거창의 진산(鎭山)으로 덕유산의 들머리에 해당하며, 금강산의 일부를 옮겨 놓은 듯하여 경상남도의 소금강이라고 부르는 명승지이다. 절과 산 모두가 나한 도량이라 하여 기도처로 이름나 있다. 신라 때부터 절이 있었다고 보이는 터에 1905년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에 살던 불심 깊은 청송 심씨 부인이 세운 절이 금봉암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심씨는 지금의 절 자리에 서원을 세우고, 용 바위 용굴샘 물을 마시며 백일 동안 단식 기도를 했다 한다. 기도가 끝나던 날 어느 곳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황금빛 새가 나타나 산봉우리에서 기도처를 세 번이나 왕복한 뒤 어디론가 날아갔는데, 그 뒤 청송 심씨는 영험을 느껴 그 자리에 절을 짓고 ‘금봉암(金鳳庵)’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출처] 금봉암 [金鳳庵]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예사롭지 않는 암봉들. 가운데 날카로운 칼바위

<삼봉산>

삼봉산은 불심(佛心), 산심(山心), 무심(無心)의 삼심(三心)이 깃들어 있고, 금봉암을 둘러싼 바위 무리들은 병풍처럼 둘러쳐 봉황의 산세를 이룬다. 금봉암은 봉우리와 바위마다 숱한 전설이 전하는데, 그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이 세 개의 바위, 세 개의 용머리, 세 개의 바위샘이 있다. 금봉암 뒤에 보이는 석불 바위는 스님이 장삼을 걸치고 고깔을 쓴 모습이며, 그 위에 장군 바위와 높이 80m에 달하는 칼 바위가 있다. 또 그 주위로는 투구봉, 용 바위, 노적봉, 신선봉, 부부봉이 병풍을 친 듯 둘러쳐져 있다. 세 군데의 바위에서 영험스러운 샘물이 솟아나 목을 축일 만한데 모두 신령스럽다고 한다. 석불 바위 뒤에 숨어 있는 샘은 피부병에 좋다 하며, 칼 바위 위 바위굴샘은 기도샘이고, 용바위 용굴샘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용굴에서 내려오면 얼굴을 쑥 내민 듯한 세 개의 용머리가 있는데 맨 위에 있는 용머리가 옛날 가뭄이 들면 거창 부사가 제일 먼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출처] 금봉암 [金鳳庵]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약수터에 사람이 살고있는 흔적이

 

산죽위의 겨울이...

 

처절한 삶을 말하는 듯 하다

 

3개의 봉우리중 하나인데 찾아보니 챙이바위라고 한다

 

백두대간이기도한 삼봉산 능선 덕유산방면

 

삼봉산 정상에서. 거창은 정상표지석을 사과모양으로...

 

겨울의 시작

 

그저 감사할 따름

 

일명 두부바위(?)

 

백두대간길이라 한컷

 

어이쿠 나무살려...

 

지난해 산죽을 모두 말라죽고 새로이 애기 산죽이 나고있어요

 

암릉아래 금봉암을 지었다

 

사과가 특산품이라는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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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300산 218차 진안 천반산
조망이 좋았으면 멋진 산행이었을듯

<천반산(山)>  전라북도 진안군의 동향면 성산리와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 경계에 있는 높이 647m의 산이다.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 진안군 상전면, 동향면 등에 걸쳐 있는 산으로 무주군 안성면에서 발원하는 양천이 감입곡류하면서 만든 죽도(竹島)를 잘 조망할 수 있다. 동향면의 8경 가운데 하나이다.

* 송판서굴과 할미굴의 전설이 있는 산 *
천반산의 주봉 서쪽 약 1.5km 지점에 옛 성터가 있는데 평평하여 군사가 주둔할 만하다. 그 아래 송판서 굴과 할미굴이 있다. 천반산 성지는 진안읍 가막리와 동향면 성산리, 장수군 천천면 오봉리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며 산 정상이긴 하지만 넓은 벌이 형성되고 우물이 있어 농성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특히, 북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어서 따로 성벽이 필요치 않다. 따라서 성벽은 서쪽과 남쪽으로만 축조하였는데 현재 서쪽 일부와 남쪽 일부가 무너진 채 남아 있다. 성의 형태로 보아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정여립이 역적으로 몰렸을 때 그 일당이 관군과 이 성에서 싸웠다고 하나 당시 전말로 보아 믿기 어렵다. 원래 성의 둘레는 약 2,000m이며, 상당량의 옛 기와편도 수습되었다.

* 천반산의 원래 지명은 천방산으로부터 변형 *
산의 형태가 소반처럼 생겨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광여], [‘해동지도], 등에는 천반산이 아닌 천방산(天方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872년 지방지도]에는 천방산(天防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천반산의 원래 지명은 천방산으로 부터 변형되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향토지에 의하면, 성터를 비롯해서 장군바위, 마당바위, 뜀바위, 깃대봉, 시험바위와 대섬 등 정여립 1546~1589)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천반산 정상
 

 천반산 산행지도

 

섬티교 섬티산장에서 시작해보는 산행

 

두리번 두리번 드디어 들머리를 찾았습니다. 

 

흙이 보이질 않는다. 나무들이 잘자랄듯 (발목까지 빠지는 낙옆숲길)

 

부여된 임무를 끝마치고 다시 흙속으로 돌아 갑니다 

 

서걱서걱 낙엽밟는 소리를 뒤로하고 진안 고원길 능선에 오릅니다

 

그리고선 완만한 사면길로 워밍업을 합니다

 

마치 제단처럼 계단식으로 놓여진 바위

 

'진북에는 개마고원 남에는 진안고원'  그 땅 진안의 고원 마을과 잊힌 고갯길을 다시 이어 만든 것이 진안고원길이다. 평균고도 300m, 고원 마을 100개, 고원 고개 50개, 총길이 200㎞. 하늘땅, 진안고원길. 그 고원길과 만나 고원길을 잠시나마 걸어본다.

 

겨울날의 산행길은 앙상한 생선 뼈다귀  같습니다 

 

우연히 진안의 멋진 산을 찾았습니다. 천반산에서 정상(깃대봉)에서

 

산위가 소반같이 납작하여 붙은 이름 정여립이 이곳 천반산에서 군사를 조련하다 역모로 고변되어 자결하였다 함

 

최근 새로 생긴 정상표지석(펌)

 

날씨가 좋으면 마이산도 보일텐데

 

인위적인 모습에 씁쓸한 모습

 

조망처의 명품 소나무, 조망 못지않게 많이 등장함

 

가야할 능선길

 

말바위 / 정여립이 군사들과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말안장같은 바위(도로에서도 보인다)

 

장전마을이 구량천이 휘감는 내민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생명은 다했지만 명품소나무로 인정. 이 또한 명품 포토존으로 등장

 

천반산성 정여립이 역적으로 몰렸을때 그 일당이 관군과 이 성에서 싸웠다고 한다

 

천반성 성터 표지석입니다. 산정부에 비교적 반반한 지형이 존재

 

 할미굴(펌). 송판서 대감의 부인이 기거했다 합니다.

 

조선을 뒤흔든 정여립 역모사건 1000여명의 선비가 죽어나갔고 이는 결국 임진왜란 등을 막아낼수 없었으며, 조선의 멸망을 불러왔다는 평가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하여 낙향한 송판서(송보산)가 수도했다는 송판서굴

 

송판서(송보산)는 단종 폐위와 세조의 완위 찬탈에 낙향하여 이 굴에 살았다고 전한다.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여기 약수는 폐를 맑게 한다고 한다고 한다. 앞선 어르신들이 막걸리 한잔을 올려놓고 갔다. 석간수가 흐르는 곳입니다

 

폐가 좋아진다고

 

 송판서는 동굴안에서 이만큼의 세상만 바라봤을 것이다. 이마저도 고마웠을 것이다

 

가야할 능선

 

뜀바위

 

정여립이 말타고 뛰었다고 하는 뜀바위 

 

구량천과 장전마을

 

이런 모습을 비경이란 단어를 사용해도 그리 무리는 아닌듯

 

 

되돌아본 하산길. 예전엔 몹시도 어려운 코스였을 듯

 

가지들이 많아 힘들었을 듯

 

건너편 고산의 모습. 고산의 아침안개 영암을 둘러있다(호남가 한대목)

 

군사들이 주둔했을 법한 평지가 있음

 

 능선이 잘려져 금강쪽 수로 및 얕은 폭포로 변한 병풍바위(펌). 1970년대 물길을 돌려 논을 만들려고 병풍바위(벼슬바위)를 폭파하였다 한다. 그러나 논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갑작스런 육지속 섬 죽도(竹島)가 생긴 것이다

 

죽도와 병풍바위 사이의 보 캠핑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천을 따라 장전마을을 거쳐 원점회귀중

 

휴양림앞 산행안내도

 

천반산 자연휴양림(개인이 운영하는 펜션정도)

 

장전마을의 캐릭터 돌탑(둥굴둥굴 납작한 돌로 쌓은 돌탑이 귀엽다) 

 

휴양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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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300산 219차 부안 의상봉

산행하기 좋은 날씨
변산바람꽃을 못봐서 아쉽다

 

<의상봉>

의상봉()은 신라 시대 의상 대사()[625~702]가 이곳에 의상암()이라는 절을 세웠다고 하여 유래한 지명으로, 동쪽 기슭에 의상암 터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輿)』에 의상암이 신라의 승려 의상이 살던 곳이라는 기록이 있다. 의상봉 이외에 기상봉(), 마천대()라고도 불린다. 마천대라고 불리는 것은 조선 중기 허진동()[1525~1610]이 의상봉에 올라 지은 시에서 유래하였다.

의상봉은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북부]와 변산면 중계리[남부]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변산반도의 최고봉[508.6m]이다. 의상봉을 중심으로 북옥녀봉[354.7m], 우금산[329.0m], 상여봉[395.0m], 남옥녀봉[434.4m], 용각봉[370.0m], 세봉[433.0m], 관음봉[424.5m], 신선봉[488.2m], 갈마봉[486.4m], 망포대[494.1m], 분초대[422.0m], 낙조대[447.0m], 쌍선봉[460.7m] 등이 변산반도 국립 공원의 내변산을 이룬다.

의상봉의 동남쪽 절벽에는 진표 율사()가 수도하였다고 전해 오는 암자인 부사의방()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부사의방장()은 신라 때 승려 진표가 살던 곳으로 100척 높이의 나무 사다리가 있으며,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면 방장에 이를 수 있고, 그 아래는 무시무시한 골짜기라는 기록이 있다. 현재는 의상봉 정상에 군사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동쪽에는 어수대가 있고, 서쪽에는 벼락 바위, 북쪽에는 새만금 간척 지구, 남서쪽에는 부안 댐이 있다. 그리고 남쪽에는 백천()을 지나[중계교] 봉래 계곡과 회양 계곡이 있으며, 백천을 따라서 지방도 제736호선이 동서로 연결된다.

[출처] 의상봉 [義湘峯]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군부대(공군)가 자리한 의상봉 정상부

 

의상봉 산행 개념도

 


 

청림마을에서 바라본 쇠뿔바위봉

아쉽게 변산바람꽃은 못보고 간다 

 

곧바로 동쇠뿔바위로 치고 올라 갑니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 경사진 쇠뿔바위봉을 그대로 오른다

 

고래등바위

 

동쇠뿔바위 정상(송창식 포즈 아님 / 손모양이 이상한 것은 시그널이 날아갈까봐)

 

MJ건설의 김사장님

 

한울회 원년멤버 안국장님

 

서쇠뿔바위

쇠뿔바위봉은 내변산 12경 중 으뜸으로 여겨진다. 국립공원 지정 이후 안전을 위해 폐쇄되었다가 2011년 23년 만에 개방되었다. 주민들에게는 귀바위봉이라 불리는 쇠뿔바위봉은 우뚝 솟은 황소의 뿔을 닮았다. 전망데크가 있는 곳이 서쇠뿔바위봉 정상이고 건너편에 동쇠뿔바위봉이 있다.

[출처]월간산

 

청림마을 

 

서쇠뿔바위 수문장 

방금 올랐다가 하산하여 서쇠뿔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동쇠뿔바위도 이렇게 근사함

 

가야할 의상봉 능선

 

 

서쇠뿔바위 가는길에 수문장처럼 서있는 미어켓바위(?). 오늘도 여기를 통과하는 이들을 하나한 체크한다. 우린 무사 통과

 

지장봉 투구봉의 암봉들

 

서쇠뿔바위 전망대에서 한컷. 요즘 힘든 산행지만을 찾아 다니는 3인. 다음은 강진은 호미동산에 도전

 

살다가 때론 금줄을 넘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의상봉 마천루

 

산죽도 봄을 기다리는 듯

 

의상암 자리엔 묘지가 자리하고

 

우물터인듯

 

원효굴에 도착

 

석간수가 흐릅니다.

 

 

원효굴 약수가 한방울씩 떨어져 만들어진 약수얼음도 보고(구전상 원효굴)

<손처사굴>

그러나 사실은 원효굴이 아니고 손처사굴(孫處士屈)이라고 하였다. 글의 내용은 2013년도 변산반도 문화자원 비화집(구전,전설)에서 채취한 내용이다.

손처사굴(孫處士屈)은 의상봉 불사의방(不思議房)에서 동북쪽 바위 벼랑 끝지점 아래에 있는 굴이다. 전설에 의하면 손씨 성(姓)을 가진 처사가 수제자를 이끌고 굴에 들어가 둔갑술이라는 술법을 터득하고자 백일 단식 기도를 위해 정진하였는데.. 백일이 지나도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시 백일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수제자들은 손처사(孫處士)를 보니 피골이 상접하여 생명유지가 어려울것 같아서 거짓말을 하였다. "처사님이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정진하던 처사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내가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데도 보지 못하니 자기 기도가 이루어진 걸로 오판하고 옷을 벗은채 속새로 내려갔다가 맞아 죽었다는 애달픈 전설과..

<또 다른전설>

또 다른 전설로는 손처사(孫處士)라는 사람이 하인을 데리고 이 굴속에 들어가 도를 닦는데 굴천장에서 맑은 물이 나오고 그 옆에서는 하얀 쌀이 매일 한 홉씩 솟아 나오는데 하인이 이를 보고 이상히 여겨 구멍을 더 뚫으면 더 많은 쌀이 쏟아져 나올거라는 생각으로 그만 부지깽이로 구멍을 쑤시자 쌀은 커녕 물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참선하던 손처사(孫處士)는 어리석은 하인의 행동을 보고 "나의 정성이 부족하여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고 구름속에 묻힌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꼼짝 못하고 죽었다 하여 낭떠러지의 골짜기를 '달상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출처] 변산국립공원 블로그에서 발췌

 

드디어 고대하던 부사의방을 보다 진표율사가 수도했다는 한평남짓한 절벽중간의 공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불사의 방장(不思議方丈)은 신라 때 승려 진표가 살던 곳으로 100척 높이의 나무 사다리가 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면 곧 방장에 이를 수 있고, 그 아래는 모두 무시무시한 골짜기이며, 쇠줄로 그 집을 잡아당겨서 바위에 못질하였다. 세상에서는 바다의 용이 만든 것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진표율사>

진표율사(眞表律師)는 전주 벽골군(碧骨郡) 도나산촌(都那山村) 대정리(大井里) 사람이다. 나이 12세에 출가할 뜻을 품으니 아버지가 허락하였다. 금산수(金山藪)의 순제법사(順濟法師)에게 가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순제법사가 사미계법(沙彌戒法)을 주고 『전교공양차제비법(傳敎供養次第秘法)』 1권과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 2권을 주면서 말했다. “너는 이 계법(戒法)을 지니고 미륵(彌勒)ㆍ지장(地藏) 두 보살 앞으로 가서 간절히 참회하여 친히 계법(戒法)을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율사는 가르침을 받들어 하직하고 물러나와 두루 명산을 유람하였다.
  나이 이미 27세인 상원(上元) 원년 경자년(760, 통일신라 경덕왕 19)에 쌀 20말을 쪄서 말려 양식을 만든 뒤 보안현(保安縣)으로 가서 변산(邊山)에 있는 불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갔다. 쌀 5홉으로 하루의 양식을 삼았는데, 그 가운데서 한 홉을 덜어서 쥐를 길렀다. 율사는 미륵상(彌勒像) 앞에서 부지런히 계법(戒法)을 구했으나 3년이 되어도 수기(授記)를 얻지 못했다. 이에 발분(發憤)하여 바위 아래에 몸을 던지니, 갑자기 청의동자(靑衣童子)가 손으로 받들어 돌 위에 올려놓았다. 율사는 다시 지원(志願)을 내어 21일을 기약하고 밤낮으로 부지런히 수도하여 바위를 두드리며 참회하니, 3일 만에 손과 팔뚝이 부러져 땅에 떨어졌다. 7일이 되던 날 밤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손에 금장(金杖)을 흔들면서 와서 그를 도와주니 손과 팔뚝이 예전처럼 되었다. 보살이 그에게 가사(袈裟)와 바리때를 주니 율사는 그 영응(靈應)에 감동하여 더욱더 정진하였다. 21일이 다 차니 곧 천안(天眼)을 얻어 도솔천중(兜率天衆)이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에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의 앞에 나타나니 미륵보살이 율사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잘하는구나, 대장부여! 이처럼 계를 구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간절히 참회하는구나.” 지장이 계본(戒本)을 주고, 미륵(彌勒)이 또 목간자(木簡子) 두 개를 주었는데, 하나에는 아홉째 간자, 또 하나에는 여덟째 간자라고 씌어 있었다.
  미륵보살이 율사에게 말하였다. “이 두 간자는 내 손가락뼈이니, 이것은 곧 시  (始)와 본(本)의 두 각(覺)을 이르는 것이다. 또 아홉 번째 간자는 법(法)이며, 여덟 번째 간자는 새로 만들어질 종자(種子)이니, 이것으로써 과보(果報)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현세의 육신을 버리고 대국왕(大國王)의 몸을 받아 이후에 도솔천 (兜率天)에 가서 태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말을 마치고 두 보살은 곧 사라졌는데, 이때가 임인년(762) 4월 27일이었다.

[출처] 관동풍악발연수석기 (關東楓岳鉢淵藪石記)

 

저 소나무가 불사의방 내려가는 입구입니다.

산꾼들의 로망 불사의방에 가려고 합니다.

 

건너편에서 동료들이 사진을 찍어주고 있습니다

(근데 그 사진은 어디 간거야)  

 

셀카로 한장

진표율사는 여기 3평 남짓한 곳에서서 무슨생각들을 했을까요

 

암자를 잡아맸다는 쇠말뚝 자국과 다람쥐 밥를 줬다는 사각 먹이 구멍도 있다

 

 

바라다 본 쇠뿔바위봉 

 

우리의 호프 김사장님

 

이제 떠나야할 시간입니다. 아쉬운 이별을 하고

 

군부대가 있는 의상봉. 통제구역이다. 

<의상봉(義湘峯)> 높이 495.7m. 변산(邊山)은 예로부터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이라 불렸고,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로 꼽혀왔다. 의상이라는 명칭은 신라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가 이곳에 의상사라는 절을 세웠다 하여 유래한 지명이라고 전해지는데 산 동쪽 기슭에 의상암 터가 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부안에 “의상암(義湘庵)은 신라의 승려 의상이 살던 곳이다." 김극기(金克己, 1150~1204)의 시에 ‘기묘한 일만 겹 바위 높은 하늘에 비껴 있어 위로 구름 끝까지 올라가니 길이 비로소 끊어졌다. 홀연히 의상대사의 여운 있음이 기쁘고, 하늘에 닿은 옛 잣나무 어둠 속 바람에 읊조린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기 허진동(許震童, 1525~1610)이 의상봉에 올라 지은 시에는 마천대(摩天臺)라는 다른 지명도 등장한다. 지형도에 기상봉으로 표기된 것은 조선지형도 부안에 기재된 의상봉(倚上峯)에서 ‘의지할 의(倚)’ 자를 ‘험악할 기(崎)’ 자로 잘못 옮긴 것으로 보인다.

 

부안호의 모습이 보입니다.

 

 

포갠바위.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인위적인 시설물이 아닌 자연상태의 모습이라면 대단히 희귀한 모습. 포갠바위 위에 올라 인증하는 분의 사진도 본적이 있다. 오래오래 남아있기를 바라며 통과한다

 

삼각봉(투구봉, 깃대봉)의 모습이다. 어쩌자고 이런 봉우리가 생긴 것일까요? 투구봉으로 올라 좌측으로 내려가려했으나 길을 못찾고(이전 답사기에서 길이 있다길래...) 회귀하여 투구봉 입구 고개부에서 길을 찾아 우측으로 하산한다

 

우리나라 산야의 모습이 아닌거 같다(일부 블로그에선 저길로 내려갔다고 나오는데)

 

병풍바위를 한번 더보고

 

우린 깃대봉에서 길을 잃었어요

돌을 굴렸는데 한참 내려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의 길이 아닌듯 합니다

 

입구 우측에서 길을 찾아 내려왔습니다 

 

너무나도 맑은 계곡뮬. 부안호가 만들어 지면서 이주한 뱀사골 구간이다

그저 반가울 따름입니다.

 

다시금 청림마을에 도착 산행을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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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300산 220차 순창 무직산

요즘 뜨고있다해서 서둘러 다녀온산

 

< 무직산 (珷織山) >

높이는 578m로 무직산 (珷織山)은 옥돌로 직조한 산이란 뜻으로 구림천을 사이에 두고 회문산 바로 건너편에 있지만 회문산이나 강천산의 명성에 가려 널리 알려지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대개 지역민들은 무직산이란 지명보다 호정소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르고 있습니다.

 

이곳 무직산 산행의 최고의 볼거리는 한반도 지형입니다.

산행의 중간쯤 되는 지점 바위 조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한반도 지형은 우리나라 여러 곳 있는 한반도 지형과 유사하지만 그걸 감싸고 있는 호정소 곡류의 풍경은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또한 호정소 계곡바위에는 공룡발자국이 있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한반도 모양보다는 발기한 남근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걸 둘러싸고 있는 호정소를 여성의 자궁으로 여기면서 음양의 형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무직산 정상(2022년에 새로운 정상표지석을 설치했다

 

한반도지형을 볼수 있는 곳이라 함

 

오늘 가야할 무직산 능산 금평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해 봅니다

 

커다란 바위들이 산정에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옥새바위 같지는 않고

 

암릉에서 자란 소나무는 분재수준

 

첫 봉우리에 큰 암봉이. 나중에 알고보니 유명한 옥쇠바위(385m)라고, 강 건너 장군봉에서 보면 그런다 합니다.

무직산정에서 보면 강아지처럼 보임

 

건너편 무직산 정상부

 

능선길도 아기자기

 

전망대 바위에 계단도 설치해 놓았네요

 

한반도 지형 (호정소라 부르고 있음)

물돌이(감입곡류하천)로 만들어진 한반도 모양의 지형은 누군가는 호정소를 여성의 자궁으로, 한반도 지형은 남근의 모양이라 여겨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형상이라고도 한다.

 

건너편 장군봉 회문산 능선(일명 빨치산 능선)

 

옥쇠바위가 여기서 보면 코끼리바위 토끼바위 정도

 

전망대도 잘 갖춰졌네요

 

물돌이 지형

 

인증삿도 남기고

 

정상부 근처의 암릉에서 본 회문산 방면 

 

정상부에서 마을 주민분을 만났네요

이분이 무직산을 널리 알리신 분입니다.

구림면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모두 이곳으로 모여든다고 합니다

 

정상표지석에서 한컷

 

마을에선 남근지형이라 했다네요

 

 

오늘의 하일라이트 소원바위, 사람바위 옆모습

 

사람바위. 마을에서 소원빌때 여기와서 빌었다고. 어떻게 보면 스핑크스 바위

 

지나면서 한컷

 

오빠는 채계산 스타일. 한마리의 산양이 되어 건너가야 겠네요

아기자기하게 다양한 코스가 준비된듯 합니다.

 

바위사이의 버위를 찍었는데 잘 안나오네요(중국 화산 비슷해서)

 

들머리인 금평마을과 금평교

 

떠나면서 보는 호정소 물돌이

 

밀양박공 무덤을 지나면 다 내려온 것입니다

 

하천 건너편 기차바위라는데

 

부채바위라 합니다

 

구림천에 도착 호정소를 볼차례입니다

 

지난온 능선이 보이고 호장소로 농로로 진입합니다 

 

 

이제 호정소 탐방입니다

 

하천 주변을 걸을수 있도록 잘 정비해 놓았네요

<호정소(湖淨沼) >

호정소는 금천리금평마을[일명 베틀아우] 동쪽에 있는 소(沼)로서 옛날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어서 비린 생선을 먹고 가면 물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베틀아우’라는 명칭은 베틀과 그에 맞는 여러 가지 도구를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이 마을 부근에 베틀에 따른 모든 기구가 있고, 이를 합쳐 아우른다는 뜻에서 기원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지형이 「회문산가(回文山歌)」에 나오는 옥녀가 비단을 짜는 ‘옥녀직금(玉女織錦)’의 형상과 유사하여 마을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도 추정된다. 특히 ‘금평(錦坪)’이라는 한자 지명이 평평한 비단 자락을 의미한다고 보았을 때 베틀과의 연관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출처] 호정소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공룡발자국이라 합니다

 

계곡마다 미니폭포가

 

여름날의 산행길로도 좋을 듯

 

애들 물놀이에도 안성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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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300산 222차 영암 국사봉

코로나19로 움추러진 조망산행
오늘의 야생화 보춘화

 

<국사봉(峰)>

월출산의 화려함에 가려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한 산이다. 높이는 615m이다. 영암군 내에서 월출산 다음 가는 높은 산으로 쌍계사라는 잘 알려진 사찰이 있다. 지금은 절터만 남아 그 규모를 짐작할 뿐, 절 입구에 돌장승인 당장군과 주장군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사찰은 신라 헌강왕 때 백운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국사봉과 덕룡산 사이 두 시냇가의 중간에 세웠기 때문에 쌍계사라고 불렀는데,  1065년(문종 18)에는 호연(浩然)이 중창하였고, 고려 고종 31년(1224) 가을, 아국사가 중국 방장산으로부터 와서 중창하였는데  아국사는 삼재(三災)가 침범하지 않는 이곳에 중창을 하려 연못을 매꾸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못에 살고 있었던 용은 조화가 많았으므로 부적을 써서 못에 던졌다고 한다. 그날 밤 광풍과 우뢰를 동반한 비가 내렸으며, 이튿날 보니 산사태로 못이 저절로 메워져 있었으므로 쉽게 절을 중창하였다.

 

그는 용의 덕을 기리기 위해서 ‘덕룡사(德龍寺)’라고 하였다. 1463년(세조 9)에는 왕의 꿈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다섯 글자를 써주면서, “이 책을 만들어 덕룡사에 비치하면 사직(社稷)이 튼튼하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왕은 곧 19명의 신하에게 명하여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언해본으로 발간하도록 하였다. 이 후 전국에서 손꼽히는 대찰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산은 주변의 산세와 다름없는 육산이다. 산 정상부는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두 개의 봉우리가 이어진 말안장 형태를 이루고 있다. 주변에는 나무가 거의 없어 조망은 거칠 것이 없으며 바위지대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특히 월출산과 강진군, 장흥군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조망이 뛰어나 6.25전쟁 당시에는 인민군 사령부가 주둔하기도 했다.

[출처] 국사봉 [國師峰]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영암의 제2봉(월출산 다음) 국사봉

 

 

인곡마을에서 산행을 시작

 

홍매화가 낯선 산객을 환영합니다

 

금표가 밭에 서 있네요

 

남도오백리길이기도한 이길을 걷습니다

 

잘 정비된 산행길(남도오백리역사숲길)

 

뭔가 느낌이 다른 길

 

쌍계사지가 나옵니다

 

폐찰된 쌍계사의 규모를 예측할 수 있는 석장생

쌍계사는 854년(신라 문성왕 16)에 백운 대사(白雲大師)가 창건하고 그 뒤 1065년(고려 문종 19)에 호연 대사가 중창했다고 하나 쌍계사가 어느 시기에 폐사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남송리 쌍계사 터관련항목 보기는 ‘남송리 쌍계사지’라고도 불린다.(당장군과 주장군)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쌍계사지 석장승 

 

마치 제주 돌하루방 같음

 

반대편 주장군

 

당간지주도 이렇게 당당하게

쌍계사의 전체적인 가람(伽藍)의 배치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절터 입구로 추측되는 곳에 높이 183cm의 대형 석주(石柱)가 있다. 이는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가운데 첫 번째 문인 일주문(一柱門)의 하단 초석(礎石)이라 짐작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또한 불화(佛畵)를 걸어 두는 괘불대 2개,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17호로 지정된 석장생(石長栍) 2기가 있다. 1900년대 초에는 귀부(龜趺)[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가 있는 호연 대사(浩然大師)의 비(碑)가 있었으나 일본인들이 옮겨 갔으며, 6·25 전쟁 직후에 삼층 석탑도 옮겨 갔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당간지구 규모로 보아 대사찰이었을듯 

 

뭔가 건물터의 흔적들

 

건물터 

 

어떻게 이렇게 자랐을까요

돌문으로 보여지는 상단에  나무가 자랐습니다

 

 

쌍계사지 알림판

 

 

1200년 세월의 쌍계사 임진왜란 정유재란시 불탔다고 함. 한두 암자가 그 명맥을 이어오다 20~30년전 폐찰됨

 

쌍계사 터. 대규모의 사찰이었던듯 함

 

혼자라는 사실이 아직도 어색하기만 합니다

 

암자터엔 기와 파편도 보이고

 

보춘화가 워밍업 중이네요

< 보춘화(花) >

춘란(春蘭)이라고도 한다. 높이 20~24cm로 산지 숲 속의 건조한 곳에서 자란다. 육질인 굵은 뿌리는 수염같이 벋고 흰색이다. 공 모양의 비닐줄기는 밀접하게 옆으로 이어지고 윗부분이 시든 잎의 밑동으로 싸인다. 잎은 모여나고 상록이며 길이 20~50cm, 나비 6~10mm의 줄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가 있다.

잎집은 잎 밑부분에 있고 나비가 좁으며 짧은 형태이다. 시든 잎집에는 황갈색의 섬유가 있다. 꽃줄기는 높이 10~25cm로서 곧추서고 연한색의 육질이며 굵은데 막질인 칼집 모양의 잎에 싸여 있다. (苞)는 길이 3~4cm로 칼집 모양의 잎과 같은 모양이나 초(齧)가 없고 바소꼴이며 끝이 뾰족하다.

꽃은 3~4월에 피고 꽃줄기 끝에 1~2개가 달리며 지름 3~5cm이고 연한 황록색이며 다소 향기가 나는 것도 있다. 꽃받침은 약간 육질이고 길이 3~3.5cm, 나비 7~10mm의 거꾸로 선 바소꼴로 끝이 둔하며 벌어진다. 꽃잎은 꽃받침과 비슷하지만 다소 짧다.
입술꽃잎은 꽃받침보다 약간 짧고 흰색이며 뒤로 젖혀지는데 짙은 적자색의 반점이 있다. 입술꽃잎 중앙에 홈이 있고 끝이 3개로 갈라지는데 중앙 갈래조각은 입술같으며 안쪽으로 가는 돌기가 밀생한다. 꽃술대는 길이 15mm로 꽃잎과 입술꽃잎에 싸여 있다.

열매는 길이 5cm 정도로 곧추서며 밑에 5~6cm인 대가 있다. 관상용으로 심으며 꽃과 잎의 변이 품종은 매우 희귀하고 비싸다. 관상용으로 남획이 심해 환경부가 특정 야생 동물·식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민간에서 피부병, 지혈, 이뇨 등에 약으로 쓰인다. 한국(제주·전남·전북·경남·울릉도)·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보춘화 [報春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영암 제2봉인 국사봉

 

무등산의 모습이 보이고

 

풍력발전기 너머로 월출산 능선이

 

멀리 지리능선도 보입니다

 

영암에선 월출산에 눌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엄연히 제2봉임

 

활성산 너머 월출산 암봉

 

수인산 너머 고흥 팔영산이

 

등산로에 수목장이 보이네요

 

생강나무가 서둘러 봄을 맞이하네요

 

층층이난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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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300산 223차 부안 옥녀봉

흐릿한 조망
오늘의 야생화 변산바람꽃 미선나무

 

<굴바위>  굴이 깊어 굴바위라 하였고, 호리병처럼 깊어 호암(壺岩)이라고도 한다.

변산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남옥녀봉[434.4m]의 남사면 중턱에 위치한다. 우동 저수지에서 왼쪽 계곡을 따라 회양재 고개를 향해 오르는 등산길의 오른쪽에 있다. 변산반도에는 해안가에서 해식 동굴을 볼 수 있고 내륙에서는 풍화 동굴을 관찰할 수 있다. 풍화 동굴은 암석의 절리면(節理面)을 따라 풍화가 진행되어 형성된 동굴인데 변산반도에는 대표적으로 울금 바위와 굴바위가 있다.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굴바위는 유문암(流紋巖)이라는 화산암이 풍화를 받아 형성된 천연 동굴이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의 절리면이 파쇄하면서 생성된 풍화 동굴로, 굴 입구에서 끝 지점까지 약 30m쯤 되며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장 높은 곳은 10m가 넘는다.

[출처] 굴바위[窟-]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남옥녀봉(바디재 근처)

 

 

청림미을 쇠쁠바위봉

 

변산바람꽃 할머니댁

왠지 쓸쓸함만이 묻어나네요

 

변산바람꽃을 보지 않고서 한해가 시작할수 있냐고 있냐고 있냐고

 

변산 아씨들

 

나무 뿌리뒤에 바람을 피하고서

<변산바람꽃>

높이는 10㎝이다. 산지의 햇볕이 잘 드는 습윤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땅속 덩이뿌리 맨 위에서 줄기와 꽃받침이 나오고, 꽃임은 꽃받침 안쪽의 수술과 섞여서 깔때기 모양으로 솟아오른다. 꽃받침 길이는 3~5㎝, 너비는 1~3㎝이다.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데, 보통 우산처럼 생긴 꽃받침 5장이 꽃잎과 수술을 떠받들 듯 받치고 있다. 처음에는 꽃받침 끝이 위로 향하다가, 차츰 밑으로 처지면서 느슨하게 허리를 뒤로 젖히는 듯한 모습으로 바뀐다. 꽃받침은 6~7장이다.
2월에서 3월 사이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에 쉽게 보기 어렵다. 꽃받침 위에서 수술들 속에 섞여 위로 치솟은 깔때기 모양의 꽃잎은 노랑 또는 녹색으로, 적게는 4개에서 많게는 10개가 넘게 달린다. 수술 수가 많고, 열매는 4월에 익는다.
한국 특산종으로, 학술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3년부터이다. 같은 해 전북대학교 교수 선병윤(宣炳崙)이 변산반도에서 채집해 한국 특산종으로 발표하였기 때문에, 학명도 발견지인 변산과 그의 이름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변산반도·마이산·지리산·한라산·설악산 등지에 자생한다.

[출처] 변산바람꽃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광내나물도 화려하게 봄을 시작하며

 

9부능선 낯선 산객에 놀란 선돌들이

 

옥녀봉 정상에 서서

 

보안면 일대

<우반동>

굴바위 일대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는 예전에 우반동(愚磻洞)이라 하여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아오고 기거하였다. 대표적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1435~1493],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저자 허균(許筠)[1569~1618], 실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1622~1673] 등을 들 수 있다. 허균이 부안에 왔을 때 굴바위에서 가까운 선계 폭포 위쪽 정사암(靜思庵)에서 소설 「홍길동전」을 완성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전란을 피해 기거하기 좋은 이른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하나가 부안 변산인데, 그 구체적인 장소가 바로 우동리 일대로 알려져 있다. 굴바위는 생활이 궁핍하여 유랑하다가 도적 떼가 된 사람들의 은신처이기도 하였다. 산수가 빼어나게 좋고 주위에 물산(物産)이 풍요로운 변산, 그 중에서도 굴바위 일대의 우동리는 사람들의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출처] 굴바위 [窟-]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암릉길 안전시설

 

특이한 바위 모습

 

산정부 미선나무도 꽃을 피우고

 

잘 가꿔진 정원처럼

 

굴바위앞 대불사모습

 

굴바위 가는길 대나무숲길

 

굴바위. 스케일이 중국 분위기

굴바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우동 저수지에서 왼쪽 계곡에 있는 대불사(大佛寺)를 지나 산길을 올라야 하고 오른쪽 산 중턱에서 만날 수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굴바위 천장에는 ‘옥정’ 또는 ‘참샘’이라 부르는 샘이 있다. 참샘에는 물을 떠 마실 수 있는 은(銀)으로 된 복지개[주발의 뚜껑]가 있었고, 이 복지개로 참샘의 약수를 떠 마시면 모든 병이 나았다고 한다. 특히 나병(癩病)에 특효가 있다고 하여 예전에는 나병 환자들이 많이 찾아와 병을 고쳤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줄포에 사는 일본인이 이 은복지개를 가져가 버렸고, 참샘의 약효 또한 없어졌다고 한다. 또 천장에 ‘아들 구멍’이 뚫려 있는데, 아들을 못 낳는 사람이 돌을 던져 맞히거나 구멍 안으로 넣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좁아져서 끝까지 들어갈 수 없는데, 바닥의 바위에 조용히 귀를 대고 들어 보면 냇물이 흐르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들리고, 이곳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부안군 변산면 해창으로 나온다고 전해지고 있다. 6·25 전쟁 때 변산을 근거지로 삼은 빨치산들이 이곳에서도 취사를 위해 불을 피웠다고 하니, 동굴 안쪽에 연기가 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멀리서 본 굴바위

그 후로 오랜 세월 잊혀 가던 굴바위가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 계기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이다. 굴바위는 극중 자영(수애)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촬영된 곳으로, 영화 속 무명(조승우)과 자영이 처음으로 교감하는 장소로 등장하였다. 외변산 채석강에 해식동굴이 있다면 내변산 굴바위는 풍화동굴이다. 동굴 밖 배경이 바다와 산이라는 것 외에 차이가 있다면 굴바위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방문객이 적다는 것 정도. 나만의 인생숏을 남기고 싶다면 지금 굴바위가 제격이다. 

 

선계폭포 바위

 

나름 숨어있던 산새

 

30m 높이의 선계폭포

<선계폭포>

폭포 주변 풍경을 신선의 세계에 비유하여 선계 폭포(仙界瀑布)라고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1335~1408]가 한때 이곳에 머물면서 수련하였다고 하여 일명 성계 폭포라고도 부르지만 역사적 근거는 없다. 선계와 발음이 비슷하여 후대에 이성계의 전설이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우동제라는 저수지 위쪽에 있다.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의 암벽에 비가 내릴 때만 형성되는 약 60m 높이의 폭포이다. 선계 폭포 위쪽에는 분지상 지형(盆地狀地形)이 있으며 여기에 비가 올 때 물이 모이면 그 물이 벼랑 아래로 떨어지며 선계 폭포를 이룬다. 선계 폭포 위쪽의 평평한 분지 지형은 해발 고도 150m에서 200m 이내에 해당한다. 선계 폭포 부근에서 반계로를 따라 바드재[180m]를 넘어가면 내변산으로 이어지며, 지질학적으로는 이곳이 남북 방향으로 형성된 단층 지역에 해당한다.

[출처] 선계폭포 [仙界瀑布]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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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300산 225호 장성 성미산

장성호 주변 데크길따라 걸어본 산행
오늘의 야생화 보춘화 매화

 

<장성호 수변길>

가슴 철렁한 스릴감과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협곡에 비상하는 두 마리의 황룡을 형상화한 21m 높이의 주탑이 있는 154m의 출렁다리는 강한 바람에도 끄떡없으며 동시에 1,000명이 통과해도 이상이 없다. 1년에 방문객 수만 30만 명 이상이고 주말이면 5천 명 이상 찾는 핫플레이스다. 현재 장성호 수변길은 내륙의 바다인 장성호와 숲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출렁길’(제방 좌측길 8.4km)과 ‘숲속길’(오른쪽 수변길 4km)로 이루어져 있다. 좌측 수변길인 ‘출렁길’에서는 옐로우 출렁다리와 황금빛 출렁다리를 볼 수 있으며, 우측 수변길인 ‘숲속길’은 호수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두 개의 출렁다리를 조망할 수 있어 수변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앞으로 장성호 수변길은 전체 34km에 이르는 장성호 수변 백 리 길을 구간별 테마가 있는 명소로 조성할 예정이다. 숲과 조화된 호수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개설한 1.6km의 수변 데크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한국관광공사의 대한민국 대표 걷기 길과 전라남도 추천 관광지로 선정되었다. 호숫가 가파른 절벽을 따라 세운 나무 데크 다리에서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탁 트인 장성호의 수려한 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다리 한쪽에선 숲의 나뭇잎끼리 스치는 소리를, 다른 한쪽에선 호수의 물이 절벽을 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최적의 힐링 스폿이다. 호수를 끼고 한참 더 걸으면 호젓한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숲길이 반겨준다. 트레킹 마니아들이 아니더라도 소나무와 굴참나무를 비롯한 각종 나무 사이로 때론 직선으로, 때론 지그재그로 펼쳐진 산속 오솔길을 자박자박 걸으며 한가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돼 지루할 새도 없다. 또 가파르지 않아 위험하지 않고 관절에도 무리가 없다. 운이 좋으면 굴참나무 도토리를 먹고사는 다람쥐를 만날 수 있다.

[출처] 장성호 수변길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성미산 정상

 

20여년만에 다시 찾은 장성호.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엔 탐방객들이 가득합니다

< 장성호 >

영산강 유역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76년 10월 장성댐이 완공되면서 생긴 호수로, 총 저수량은 103,882.6천㎥이다. 백암산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황룡강을 막아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나주시·장성군·함평군 등 4개 시군의 관개용수와 생활 및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잉어·초어·백련·붕어 등 각종 민물고기가 서식하여 낚시터로 유명하며, 남북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경관으로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장성호 상류 중간지점 관광지에는 야영장·가족유희장·취사장 등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댐 아래로 넓게 설치된 주차장과 다목적 광장에서는 가족이나 직장동료들의 단체활동이 가능하다.

수상스키·카누경기 등 각종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유람선이나 모터보트를 타고 수상관광도 즐길 수 있다. 북쪽으로 내장산국립공원을 비롯하여 주변에 입암산과 남창계곡, 백암산과 백양사, 내장사·고산서원·추월산 등 볼거리가 많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장성읍에서 버스편이 수시로 운행된다. 

[출처] 장성호 [長城湖]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수변 데크길을 잘 정비해 놓았네요

 

대나무숲 사이로 댐에 오르는 길도 일품입니다

 

출렁다리도 건설되어 있네요 연장 154m로 2018년 완공 비상하는 2마리의 황용을 형상화 했더고 합니다

<옐로우 출렁다리>

장성군 장성호에 위치한 장성호 상류인 장성읍 용곡리의 호수 협곡을 허공으로 연결하는 154m 길이의 출렁다리로, 2019년 6월 25일 개통됐다. 이 다리는 양쪽에 황룡을 형상화한 21m 길이의 주탑을 세워 장성군의 도약을 표현했는데, 명칭은 장성군을 상징하는 ‘옐로우시티’와 ‘출렁거리는 다리’를 더해 ‘옐로우 출렁다리’로 명명됐다.
 옐로우 출렁다리는 장성호 수변길과 연계돼 있는데, '장성호 수변길'은 장성호 선착장과 북이면 수성리를 잇는 7.5km의 트레킹 코스이다. 출렁다리는 장성호 수변길 시작점에서 1.2km 지점과 2.7km지점을 바로 연결하고 있어 수변길의 완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특히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위에서 장성호의 경관을 보다 가까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출처] 열로우 출렁다리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아기자기한 트래킹길. 예전렌 미처 몰랐네요

 

소나무숲길도 근사함 그 자체입니다

 

제2 출렁다리 공사도 한창입니다

 

황룡강에서 발원하여 장성호로 모인 황룡의 모습

 

풍차와 호수펜션이 있는 휴게소. 제법 동네분위기 납니다

 

여름날의 산행길로 적합할듯

 

호수마을 수성마을 입니다. 버스정류장도 있습니다

 

성미산 정상부의 통신탑. 봉수대가 있었다 합니다

 

성미산 정상입니다. 밍점산성 최고봉이기도 하고요

< 망점산성지(址) > 

장성군 북이면 수성리 성미산에 축성했던 산성의 터이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수성리 수성마을 성미산(388m)에 있다. 이곳에서 수습된 토기편과 자기편 등의 유물을 통해 삼국시대에 축조되고, 조선 세종 때 폐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미산 서쪽 정상부와 동쪽 8부 능선을 따라 돌로 축조한 테뫼식 산성이다.
성벽은 전체 길이 800m, 폭 5m에 이르며, 서벽 일부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다. 서벽 중 가장 잘 남아 있는 부분의 높이는 약 2m이다. 길이 1m 정도의 돌로 기단부를 쌓고, 그 위로 길이 50cm 정도의 돌을 수직에 가깝게 쌓아 올렸다. 성 안으로 가로 30m, 세로 10m 규모의 건물터 흔적이 보이고, 연못터도 발견된다.

[출처] 망점산성지 [望岾山城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아마도 이 지역에 자생하는 노란 상사화일듯 합니다

 

마을에는 수선화가 바람속에서 성급하게 꽃을 피우려 하네요

 

매화는 이미 만개 만개 합해서 이만개

 

장성호 수변길입니다. 계속 개발중 입니다

 

편백나무 숲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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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300산 230차  담양 과녁바위산

코로나19속 방문객들도 열체크 마스크 착용
오늘의 야생화 하늘말나리 각시원추리

 

<과녁바위산>

추월산 앞 도로는 조선시대 과거를 보기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는 도로중의 하나이다

도로 맞은편에 위치한 과녁바위는 과녁판처럼 생겨 무과 응시 유생들이 활을 한 번 씩 쏴 보았다고 하여 불리워지고 있다.

바을 주민들은 <가낙바우> 라고도 한다.

 

 

과녁바위산 정상

 

추월산은 새각시처럼 부끄러워서 운무를 뒤집어 쓰고 ...보리암만 겨우 우릴 처다보고

 

열체크에 마스크까지...

 

추월산 주차장엔 차들이 몰려 드네요
 

용마루길을 진행해봅니다

 

인공폭포가 아직 시간이 이른가 봅니다

 

용마루길

 

연리지도 이렇게 서로를 얼싸안고 있습니다

 

다람쥐는 뭐 방문객들을 무서워 하지도 않습니다

 

오전에 그늘진 데크길 여름철 산책길로 제격입니다

 

오 나의 하늘말나리

<하늘말나리>

하늘말나리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반그늘이고 부엽질이 많은 토양이나 모래 성분이 많은 토양에서 자란다. 키는 60~90㎝이고, 잎은 크게 돌려나는 잎이 줄기 중앙에 6~12개씩 달리고 타원형으로 뾰족해진 끝과 점차적으로 좁아진 밑부분이 직접 원줄기에 달려 있다. 또한 작게 어긋나는 잎은 줄기 윗부분에 달리는데 길이 9㎝, 폭 2㎝ 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더 작아진다. 꽃은 황적색 바탕에 자주색 반점이 많이 있고, 지름은 4㎝ 정도이고 원줄기 끝과 곁가지 끝에 1~3개의 꽃이 위를 향해 달린다. 열매는 9~10월에 익으며, 편평하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잎의 줄기와 비늘줄기는 식용으로 쓰인다.

[출처] 하늘말나리(야생화도감(여름), 2010. 6. 28.)

 

오늘은 집사람이 따라 나섰습니다

 

각시원추리도 반갑다고 인사를...

 

노루목 전망대엔 담양호 수몰지역민들의 마음을 담아 지은 부흥정이 있습니다

 

영지버섯도 보이고

 

잘정비된 아기자기한 산행길

 

여기도 연리목이...서로 다른 두나무가 얻덯게 저렇게 살았을까요

 

연리지 

 

50대에 세상이 만만치 않았다는 얘기에 다소간에 조심스럽게 공감해 보면서

 

과녁바위 정상에서

 

 

담양호의 모습입니다. 금성산성 능선도 보이고 이런걸 수려하다고 해야하나요

<담양호>

담양호는 1976년 9월에 축조된 제방길이 316m, 높이 46m, 만수 면적 405ha에 저수량 6,670만 톤 규모의 호수다. 담양 평야 4,245ha의 농토를 커버하는 농업 용수원으로 영산강의 시원지이기도 하다. 추월산 관광지와 가마골 청소년야영장, 금성산성 등에 둘러싸여 있어 담양 제1의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산허리를 뚫은 터널을 통하는 산간 호반 도로는 훌륭한 드라이브 코스로, 도시민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바라만 봐도 속이 다 시원한 담양호로 향하는 것을 추천한다. 구경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담양호와 담양호를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즐거운 추억거리를 만들기에 참 좋은 곳이다.

[출처] 담양호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과녁바위산 중턱에서 바라본 추월산 능선

 

폭포가 흘러 내리기 시작합니다. 예전 과거보러가던 이들이 길건너에 화살을 쏘았다는 과녁바위가 이 폭포 바위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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