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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300산 180차 고창 소요산

소요사의 기암괴석이 압권

 

< 소요산(山) >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선운산 도립공원 내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45.6m이다. 선운산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상에 오르면 줄포만과 변산 까지 조망할 수 있다. 
산의 중심부에는 연기저수지가 위치하며 저수지 주위를 둘러싼 산의 능선을 따라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선운산 명성에 가려져 찾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소요산 서쪽 약 400m의 높이에는 백제 위덕왕 때 소요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소요사(逍遙寺)가 있으며 사찰내에는 대웅전, 칠성각, 산신각 등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 

[출처] 두산백과 두피디아
 

 

 

 소요산 정상부

 

 

 

바위사이에 세워진 소요사

<소요사>

소요산 동쪽에는 백제 위덕왕 때 소요대사가 창건한 소요사가 있다. 이 곳에 소요사를 창건한 소요대사, 연기사를 창건했던 연기조사와 도선선사 등 당대의 고승들이 머물렀다. 북쪽에는 미당 서정주의 고향인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에 미당시문학관이 있다. 소요산 주변에서 미당 서정주, 인촌 김성수, 보천교의 창시자 차경석 등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서쪽에는 고창의 젖줄인 주진천[인천강]을 비롯한 선운산 도립공원 자락에 동백과 상사화로 유명한 선운사가 있다. 소요산 산행 코스는 연기동-연기제-소요사-소요산-미당시문학관 구간으로 이어진다.

[출처] 소요산 [逍遙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가을의 정취는 역시 감나무다

 

입구 수호신같은 두바위 밑에는 공적비를 비롯 수많은 사연이 있는듯 하다

 

범상치 않은 장소로 느껴진다

 

호랑가시나무 열매가 예술이다

 

바위틈 공간마다 이렇게 사찰로 이용하고 있다

 

소요산 전망이 훌륭하다

 

 

고창읍 방면. 방장산 능선이 보인다

 

선운산 산군들이다. 중간쯤 거북이같은 배맨바위도 보인다

 

초록이 그리운 계절이다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네요

 

가을과 겨울사이에...

 

역시 가을날은 감나무

 

미당 시문학관이다

<미당 서정주>

본관은 달성(), 호는 미당()이다.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고향의 서당에서 공부한 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으로 등단하여 같은 해 김광균()·김달진()·김동인()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고 주간을 지냈다. 1941년 〈화사()〉〈자화상()〉〈문둥이〉등 24편의 시를 묶어 첫시집 《화사집》을 출간했다.

그러나 1942년 7월 《매일신보》에 다츠시로 시즈오[]라는 이름으로 평론 《시의 이야기-주로 국민 시가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친일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후 1944년까지 친일 문학지인 《국민문학》과 《국민시가》의 편집에 관여하면서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1943), 《인보()의 정신》(1943), 《스무 살 된 벗에게》(1943)와 일본어로 쓴 시 〈항공일에〉(1943), 단편소설 《최제부의 군속 지망》(1943), 시 《헌시()》(1943), 《오장 마쓰이 송가》(1944) 따위의 친일 작품들을 발표했다.

1948년 《동아일보》 사회부장·문화부장, 문교부 예술국장을 거쳐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이후 조선대학교·서라벌예술대학교 교수, 동국대학교 문리대학 교수(1959~1979)를 지낸 뒤 동국대학교 대학원 종신 명예교수가 되었다. 1971년 현대시인협회 회장, 1972년 불교문학가협회 회장, 19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1984년 범세계 한국예술인회의 이사장, 1986년 《문학정신》 발행인 겸 편집인을 지냈고, 2000년 12월 24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문학상·대한민국예술원상, 5·16 민족상, 자유문학상 등을 받았고,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2002년 2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자체 조사하여 발표한 '일제하 친일 반민족행위자 1차 명단(708명)'에 포함되었다.

[출처] 서정주 [徐廷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고창에도 고인돌 질마재길이 있네요

 

항아리들이 정겹다..

 

미당의 생가

고창의 선운사, 질마재 부근 진마마을에 위치한 미당 서정주의 생가이다. 미당은 어린 시절 이 집에서 서당을 다니다가 10살 때 인근의 줄포로 이사하여 줄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5세 때인 1929년 서울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곳은 그가 아홉 살 무렵 부안 줄포보통학교에 입학하려고 이사 가기 전까지 살던 집인 것이다. 1942년 부친이 죽은 후 친척이 개조하여 거주하다가 1970년 경부터는 사람이 살지 않은 채로 방치되었고 2001년 복원되었다. 생가 곳곳에는 그의 시와 글이 새겨진 큰 바위가 세워져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초가지붕 본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헛간이 있는 초가지붕 아래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인근에는 미당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 시문학관과 인촌 생가가 위치한다.

[출처] 미당 서정주 생가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선운산 동구

 

선운리 우체통도 서정적이다

 

미당이 자전거를 즐겨 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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