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을 여(如), 가루 분(粉)을 쓰는 여분산(如粉山)은 꽃가루와 같은 산이라는 의미이다. 산 남쪽에는 벌통산이 있는데, 벌은 꽃가루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여분산은 순창 구림의 기두봉(起頭峰)으로, 풍수지리상 산줄기는, 동남쪽을 뻗어 나온 용이 구림천에 이르러 온순해지면서 전답에 나타난 현룡재전(顯龍在田)의 명당이다. 여분산은 일명 엽운산으로도 불린다.
여분산 정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매우 뛰어나다. 남으로 호남 정맥 용추봉과 무등산, 동으로 지리산의 연봉들이 마루금을 이룬다. 서로는 용추봉과 세자봉이 눈앞에 펼쳐진다. 북으로는 쌍치와 산내의 오두봉, 깃대봉이 자리하고 북동쪽으로는 장군봉과 회문산이 있다.
운항 마을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여분산[774.3m]의 전위봉인 작은여분산의 두 봉우리가 마치 여인의 젖무덤처럼 다가온다. 『순창군지』와 『한국 지명 총람』에 따르면 여분산 아래 운항은 조선 선조 때 해주 오씨가 정착해 구름 속에 묻혀 있어 행복한 마을이란 의미로 운행(雲幸)으로 불렸으나, 1935년 운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마을 뒷산 질재골은 일심[갱정 유도] 교주가 도를 닦았던 곳이다. 밤재 아래 단풍정이는 마을 둘레의 산들이 마치 꽃봉오리를 이루고 있는 절경으로 중국 고사에 나온 황국 단풍을 본뜬 것이다.
여분산 북쪽의 금상골은 풍수지리상 천기를 누설하면 안 될 ‘군왕이 태어날 명당[君王之地]’으로 임금을 지칭하는 금상(今上)인데, 금이 나온다는 금상(金箱)으로 바꿔 표기했다고 한다. 따라서 장군봉은 투구를 쓰고 장검으로 무장한 임금을 호위하는 호위대장 역할을 하고, 세자봉(世子峰)은 임금[금상굴] 앞에서 스승 격인 북쪽의 국사봉(國師峰)[지형도에는 깃대봉으로 표기됨]의 가르침을 받는 형국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비금도는 이름부터 매혹적이다. 한자로 쓰면 ‘날아가는 새’라는 뜻인 비금(飛禽)인데, 지도를 보면 섬의 형태가 영락없이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모습이다. 뭍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고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면적은 44제곱킬로미터로 백령도와 비슷하다. 바로 이웃한 도초도(41.94㎢)와는 1996년에 서남문대교로 이어져 사실상 한 섬이 되었다. 비금도의 하누넘해수욕장은 하트 모양의 해안선이 눈을 의심케하는 절경을 이루고, 편의시설 하나 없는 명사십리는 자연 그대로 담담하다.
선왕산 정상
비금 산행안내도
위성사진상의 산행안내도
가산항의 비금도 상징물 . 비상하려는 독수리. 비금도는 지형이 동 · 서로 산맥을 거느리고 있는 모양이라 마치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모양을 닮았다고 하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매년 봄철 산행대회가 열린다는 곳 상암마을을 들머리로 출발해 본다.
등산코스를 알기쉽게 그려 놓았네요
잘 정비된 입구입니다.
모야모에 물어서 알아냈어요 자주쓴풀(가끔안쓴풀?).식물성 음료, 민간약의 하나로 자주쓴풀은 두해살이풀이다. 강한 고미를 가진다. 9월에 개화기에 전초를 채취하여 수세하여 천일 건조한다. 건조한 것을 믹서에 갈아 분말로 하여 1∼2g을 컵 1∼2잔의 물로 반이 될 때까지 졸이고 식전 30분이나 식후 곧 마신다. 건조한 것을 그대로 졸여도 좋다. 위장병의 전반, 과식, 가슴앓이, 원형탈모증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솔방울 소문중 회의중
산국이 앙징맞게 피었다. 일반적으로 국화과에 속하는 식물들을 대개는 들국화라고 부르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런 이름을 가진 식물은 없다. 들국화란 이름은 가을에 피는 국화과의 야생화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가을이 되면 찬바람이 이는 쓸쓸한 산기슭이나 들에 노랗게 피어 국화향기를 짙게 내뿜는 꽃이 바로 산국이다.
초입부 그림산의 암봉의 위용에 화들짝 놀라 봄
컥. 진도 동석산을 보는것 같기도 하고. 신안의 소금강으로 불리운다 합니다.
우리나라지도바위
우회길도 있지만 해산굴을 통과하려는 동호회들의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다.
좁은 바윗구멍으로 나오면서 해산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해산굴. 어렵게 통과
그림같은 그림산 정상에 서서
자은 암태 방면의 다도해. 염전의 모습도 보이고
지나온 그림산 암봉의 모습
투구봉까지의 데크길이 연결되어 있다. 투구봉에서의 조망은 일품일듯
투구봉 전망대
나좀 보고가요 네?(고개를 조금 비틀며) 이렇게 말하는 벌개미취
죽치우실재의 대나무터널
선왕산 방면으로 이동합니다.
죽치우실 : 우실은 바람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돌로 쌓은 방풍시설로, 우실의 어원은 울실로 마을의 울타리라는 뜻이다. 우실은 바다쪽인 하누넘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피해가 크자 마을사람들이 이를 막기 위해 쌓은 돌담이다. 칼바람처럼 매서운 해풍을 막기 위해 산 정상 부근 골짜기에 석성처럼 쌓아, 멀리서 보면 성곽처럼 보이는 곳이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산정에 돌하루방이 / 할아버지 새로산 보청기는 어때요 / 나는 보라색이 좋아
드디어 하뉘넘이 있는 서쪽 바다를 봅니다.
이곳의 최고봉인 선왕산 정상의 모습
비금도 최고봉 선왕산에 서서
바위산의 모습을 잠시 감추고 때론 부드러운 육산으로 깜짝변신
잔대의 모습
시금치의 고장 비금 가을 추수가 끝난 들녁엔 시금치가. 염전이 불황을 겪고 쇠퇴하게 되자 섬주민들은 새로운 일에 주목했다. 바로 시금치 재배다. 비금도에서 시금치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58년부터라고 하는데, 죽림리에 사는 최남산이란 사람이 종자를 사들여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가능성이 타진되었다.
주민들이 겨우내 ‘섬초’를 생산하고 나면 허리를 펴질 못할 만큼 생산량이 많다고 한다. 노동의 강도에 따르는 허리통증이 얼마나 컸으면 봄철에 목포의 병원에서 구부정하게 돌아다니는 사람은 틀림없는 비금도 주민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이다. ** 출처:명사십리와 기암절벽을 가진 섬 (한국의 섬)
전국생산량의 40%이상을 생산. 비금에서는 특허청에 시금치를 섬초로 등록
돌담장이 인상적인 마을길
하누넘 하트해변입니다. 하트모양이 제대로 나오려면 물이 더 들어야 겠어요
하트해변 하루와 너미의 애절한 사랑(펌). KBS드라마 <봄의 왈츠>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하누넘해수욕장.해변이 하트모양을 닮아 하트해수욕장으로도 알려져 있어 연인과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고 있다.
* 하누넘 : 산 너머 그곳에 가면 하늘과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누넘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하누넘은 북서쪽에서 하늬바람이 넘어오는 곳이란 뜻이라 한다. 하누넘은 하누와 네미의 합성어다.
배타고 고기잡이 나간 하누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원하는 너미. 그러나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는 하누. 하투모양의 눈물의 바다를 만든 너미
우리나라에서 천일염전이 최초로 시작된 곳이 비금도.
1946년 이전에 신안지역은 천일염을 만들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불문율을 깨트린 사건이 일어났다. 평안남도 용강군에 위치한 주을염전으로 징용을 갔던 박삼만이란 사람이 해방이 되자 고향인 신안으로 돌아오면서부터이다.
박삼만은 고향으로 돌아오자 갯벌을 막고 염전 만드는 실험을 시도했다. 그가 개척한 구림염전은 마침내 비금도를 소금의 섬으로 바꾸어놓는 기적을 창출했다. 구림염전에서 그가 시도했던 소금제조법은 이어서 다른 섬에까지 전해져 널리 확산이 되었다. * 출처:한국의 섬 - 신안군
비금도 대동염전(사진출처:대한민국역사박물관).비금도는 섬지역 천일염의 시발지로서 의미가 크며, 천일염전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대동염전은 근대산업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362호
비금의 명사십리 해수욕장(펌) (신안 4대해수욕장중 하나).4km에 달하는 고운 모래해변과 친환경 청정에너지인 풍력발전기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파시로 바다를 가득매운 1960년대 흑산도 예리항 모습(사진출처:목포시)
비금의 원평파시는 강달이 시장이 칠팔도로 옮겨감에 따라 일제강점기에 파시도 송치파시로 옮겨 갔다. 파시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낭만적인 느낌이 들 정도이다. 고기를 가득 싣고 모여드는 어선들을 상대로 한 초막들이 수도 없이 두 줄 세 줄로 서 있다가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곳, 여인들과 어부들이 어울려 고단함을 달래는 장소이다. 비금도의 관문 역할을 했던 수대항과 경계를 이루는 곳 송치포구, 일제강점기에는 강달어 파시가 형성되어 아가씨들이 있는 술집이 수십 개에 달했다. 해방 이후에는 송치포구에도 강달어와 함께 새우 파시가 동시에 형성되었다.‘개도 돈을 물고 다녔다’는 곳이다'.그러던 중에 1965년도에 동력선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파시가 축소되기 시작했다. *출처 : [비금도]명사십리와 기암절벽을 가진 섬 (한국의 섬 - 신안군)
강달이는 참조기, 수조기, 부세, 민어 등과 함께 민어과에 속한다. 지역에 따라 황세기(충남 아산), 황새기(서산, 군산), 깡치(서산, 영광), 황숭어(법성포), 황실이(목포) 등으로 불린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조기, 보구치, 반애, 황석어 등을 모두 조기로 분류했다. 간혹 조기 새끼를 강달이의 한 종인 황강달이로 헷갈리기도 한다.
이세돌 기념관을 빼놓을수 없다(펌). 바둑천재로 불리는 이세돌이 이곳 지동마을 출신이라서 그가 태어난 마을 옆의 폐교를 기념관으로 조성해두었다. 1983년생인 이세돌이 아홉 살 때 바둑공부를 위해 상경하기 전까지 비금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림면의 장군봉은 호남 정맥 용추봉에서 회문산을 이어주는 산의 요충지다. 순창에는 장군봉이 세 곳 있다. 내장산 장군봉은 높이 696m,쌍치면 장군봉은 높이 606m이며, 구림면 장군봉이 780m로 가장 높고 뾰쪽하다. 산줄기는 백두 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서북으로 갈려나온 금남 호남 정맥이 진안군과 완주군의 경계인 주화산에서 두 갈래를 친다. 주화산에서 북쪽으로 금남 정맥을 보낸 호남 정맥이 남진하며 만덕산, 경각산, 오봉산, 내장산, 백암산, 추월산, 용추봉에서 동쪽으로 지맥 하나를 나눈다. 이 지맥은 세자봉[700.9m], 여분산, 깃대봉을 지나 장군봉을 솟구쳐 놓고 회문산[830m]으로 뻗어간다. 장군봉의 물줄기는 남쪽은 구림천을 통하여 섬진강, 북쪽은 곧바로 섬진강 상류에 합수되어 광양만의 남해로 흘러든다.
장군봉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회문산, 용궐산[지명 변경 전 명칭: 용골산], 원통산, 풍악산이 바라다 보이고, 남쪽으로는 강천산, 광덕산, 설산이 굽어보인다. 북쪽에는 백련산, 고당산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고, 서쪽에는 쌍치면 장군봉, 내장산 신선봉과 장군봉, 고창의 방장산이 우뚝 서 있다.
풍수지리상 구림면 운북리와 방화리 경계인 여분산 북쪽의 금상골은 천기를 누설하면 안 될 ‘군왕이 태어날 명당[君王之地]’으로 임금을 지칭하는 ‘금상(今上)’인데, 금이 나온다는 ‘금상(金箱)’으로 표기됐다고 한다. 장군봉은 투구를 쓰고 장검으로 무장한 임금을 호위하는 호위대장 역할을 하고, 세자봉은 임금[금상굴] 앞에서 스승 격인 북쪽의 국사봉(國師峰)[지형도에는 깃대봉으로 표기됨]의 가르침을 받는 형국이다. 장군봉이 속한 금창리의 금상 마을에는 마을 입구에 1기의 탑[돌무더기]과 탑 양옆으로 2기의 짐대가 있어 현재도 음력 2월 1일 금창리 탑제를 모시고 있다.
[출처] 장군봉[將軍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장군봉
회문산 장군봉 개념도
휴양림에서 출발
<국립 회문산 자연휴양림>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에 있는 자연휴양림으로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에서 관리한다.
회문산은 최익현을 비롯하여 임병찬, 양윤숙이 이끄는 의병의 항일무장투쟁 무대이며 한국전쟁 전후에 지리산과 더불어 빨치산의 근거지로 이태의 소설 [남부군]의 무대이다.
회문산 북서쪽 해발 780m의 장군봉 아래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으며 빨치산 간부 훈련장이던 노령학원이 있었던 중턱에 산림욕장이 조성되었다. 2,876,000㎡(87만 평)에 조성된 자연 휴양림은 빼어난 절경과 함께 역사의 현장으로 주목되어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휴양림 입구에는 성벽처럼 쌓아 올린 노령문이 있다. 그 옆에 폭포가 있고 길이 30여m의 구름다리 위쪽에 전망대가 있어 주변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회문산 주봉으로 가장 오르기 쉬운 안정리로부터 3시간이 걸리는 5.5km의 험한 바윗길과 울창한 숲속에 도로를 개설하여 정상에 오르기가 쉽다.
자연 발생한 신갈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류가 주 수종을 이루며 단풍나무, 산벚나무 등과 진달래, 으름, 붉나무 등이 분포되어 있어 봄가을에 아름다운 꽃과 단풍을 볼 수 있다. 꾀꼬리, 산비둘기, 뜸부기, 까투리, 장끼 등도 서식하고 있다. 휴양림에는 비목공원, 빨치산사령부 등 교육 시설과 물놀이장, 체력단련시설, 배구장 등 체육시설이 있으며 대피소, 정자 다목적광장, 산책로, 등산로 출렁다리 등이 있다.
[출처] 국립 회문산자연휴양림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돌비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산행을
첫번째 봉우리 돌곶봉
(돌곶은 돌깨 도리깨를 말한다 합니다)
멀리 산그리메
시루바위. 시루떡처럼 포개진 바위
소원들이 모인 돌무더기
가야할 장군봉
주홍서나물 아직 꽃들이 남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네요
<주홍서나물>
주홍서나물 한글명을 처음 기재한 자료는 이미 먼저 보고된귀화식물붉은서나물에서 힌트가 된 주홍의 서나물이라고 밝히고 있다.그런데 붉은서나물은 잎 모양과 닮은 피크리스속(Picrisspp.)의 쇠서나물이 힌트가 되어 거기에 ‘붉은’을 더한 것이다.때문에 붉은서나물은 정확히 ‘붉은쇠서나물’이어야 한다. ‘쇠서’라는 말은 쇠와 서의 합성어로 ‘쇠’ 자가 빠지면 미완성의 이름이 된다. 쇠서는 소(쇠,牛)의 혀(셔 > 서,舌)를 의미한다(쇠서나물참조).
4천여 종의 우리 식물이름에 서나물이란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붉은서나물의 서나물이란 명칭은 출처불명이란 것을 말해준다. 그렇지 않다면 ‘서’ 자의 의미로 솜 서(絮)의 ‘서’ 자로 이름의 유래를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서’ 자는 거친 풀솜, 솜털, 헌 풀솜, 솜옷 등을 의미하는 한자 음(音)이 되고, 그렇게 되면 서나물은 일본명에 잇닿아 있는 한글명이 되는 것이다. 일본명 베니바나보로키꾸(紅花襤褸菊)를 직역하면 ‘꽃잎은 주홍(紅花)이고, 누빈(누더기) 옷이 해져서 속에서 나온 솜털 모양(襤褸, 남루)같은 흰 깃털(冠毛)의 열매가 있는 국화 종류(菊)’라는 의미다.
회문산은 풍수지리적으로 유명한 산 중 하나입니다. 예로부터 회문산은 모악산과 서로 음양관에 있다고 불릴 만큼 명당입니다. 회문산은 양의 기운이 강해서 아버지 산으로 불리고, 모악산은 음의 기운이 강해서 어머니 산으로 불렸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회문산은 마치 다섯 신선이 서로 바둑을 두고 구경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전해져서 조선 시대 유명 지관들이 찾던 필수 명당이었다고 합니다.(전북특별자치도 블로그)
산죽의 산행길이 마치 한라산에 온듯
여근목 한국전쟁때 온산이 불탔는데 이 나무들만 살아 남았다고
회문산은 예부터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음기가 강한 산이었다. 동양 최고의 ‘여근목 소나무’가 나온다. 정상부근에는 남녀의 궁합을 말하는 ‘천근월굴’도 있다. 여근목의 생김새는 그야말로 요상하고 희화적이다. 한국 전쟁의 화마와 빨치산 토벌을 위해 온 산에 불을 질렀음에도 여근목은 살아남았다.
작은 지붕이 눈앞에
천근월굴바위
천근월굴은 큰 구멍이 나 있는 바위로 두 세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과 정면에 상형문자로 천근월굴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강절 선생의 유가 시에 나오는 글로, 천근은 남자의 성, 월굴은 여자의 성을 나타내 음양이 한가로이 왕래하여 소우주인 육체가 모두 봄이 되어 완전해진다는 뜻이다.
큰지붕에 도착
회문산은 예로부터 호남정신의 반은 순창에 있고 순창정신의 반은 회문 (湖南精神半在淳昌 淳昌精神半在回門)이라는 말처럼 인물과 명당이 숨겨진 곳이라 한다.
마지막 삼연봉을 돌아서
태풍에 쓰러진 용트림소나무가 아직 남아 있네요
예전 용트림 소나무 모습
구름다리를 건너면 산행종료
노령문이라 합니다 순창에서 임실 넘어가는 갈재란 고개가 있는데 한자로 노령
만일사(萬日寺)는 삼국시대에 창건되었지만 절 이름은 태조 이성계의 설화에서 탄생했습니다. 무학대사가 고려 장수 이성계의 왕위 등극을 위해 무려 10,000일 동안 기도했다는 데에 나왔다고 하니 무려 27년간 기도를 했다는 게 의심스럽지만, 사실관계를 떠나서 무학대사의 염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전북특별자치도 블로그)
만일사비
순창 고추장은 이성계에 의해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고려 장수 이성계는 남원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주변 지역 산세 지형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무학대사가 만일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으러 갔습니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근처 농가에 들러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성계는 조촐한 밥상에서 꿀맛 같은 고추장을 만나게 됩니다. 상추와 꽁보리밥 사이에 고추장을 넣어 싸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었는지, 왕이 된 이후에도 오로지 순창 고추장만 찾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져옵니다. 이에 대한 애용은 만일사 입구에 있는 비석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만일사 비에는 왕의 진상품으로 올라가던 고추장과 만일사 역사가 적혀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파괴되었던 만일 사비를 복원해서 그 내용을 확인했지만, 현재는 비문이 마멸되어 눈으로 쉽게 읽을 수 없습니다.(전북특별자치도 블로그)
면적 60.27㎢, 인구 5,986명(2001), 해안선길이 60.5km이다. 최고봉은 삼암봉(三岩峰:196.2m)이다.
목포시에서 육로로 66㎞ 지점에 위치하며 군청과의 거리는 58.4㎞이다.
1975년 2월 무안군 해제반도(海際半島)와 연륙교(連陸橋)로 연결되어 차량으로도 통행이 가능하다. 원래 태이도(台伊島) 등 여러 개 섬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감석지의 발달과 간척사업으로 하나의 섬이 되었으며, 남쪽에 사옥도(沙玉島), 서쪽에 임자도(荏子島), 북쪽에 어의도(於義島) 등이 있다.
삼국시대 백제의 고록지현(古祿只縣)에, 통일신라시대에는 압해군 관할하의 임해현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 임해현에서 임치현으로 이속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영광군에 속하였다가 후에 나주목(羅州牧)에 편입되었다.
1682년(숙종 8) 지도진(智島鎭)과 목장이 설치되었으나 1683년 위도(蝟島)에 수군진영이 설치되면서 위도 관할하에 있었다. 1896년에는 신설된 지도군(智島郡)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무안군에 편입되었고 1969년 신안군으로 편입되었다.
섬의 서쪽에는 삼암봉·봉황산(鳳凰山:164m)·두류산(165m) 등 경사가 급한 산이 많고, 해안지대는 간척공사로 넓은 평지가 형성되었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콩·고구마·양파 등이며 특히 간척지에서 나는 쌀은 질이 좋아 특산물로 꼽힌다.
근해에서는 멸치·가오리·숭어·농어·문어·낙지·김 등이 산출되며 염전이 개발되어 소금 생산량도 많다.
유적으로는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11호로 지정된 지도향교와 두류산의 오선생비, 비석 24기가 늘어선 자동리의 비석거리가 있으며 장수바위 전설과 갈뫼봉 노래, 성주타령 등의 민요가 전해진다.
[출처] 지도[智島]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삼암산 정상
읍사무소에서 산행시작
개량 동백꽃이 한창
아기자기한 산행길
산국도 얼마남지 않은 가을을아쉬워 하며
꽃봉산에서 보는 지도대교 사옥도 증도방면
흐린 가을하늘에 가을이 이렇게 편지를 잔뜩 써 놓았네요
누가 돌보지 않아도 잘 자란 나무
낮지만 등산로가 만만치 않네요
무슨일인지 이파리가 새로 난듯 합니다
깃대봉에서 한컷
귀여운 콩짜게덩굴도 산객을 반기고
영지버섯 입니다
<영지(靈芝) >
한국에서는 불로초과의 버섯인 영지(GanodermalucidumKarsten) 또는 근연종의 건조시킨 자실체를 말한다. 영지는 불로초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버섯이다. 중국에서는 영지를 비롯해서 자지(GanodermasinenseZhao.XuetZhang:紫芝)의 자실체를 건조시킨 것을 말한다. 일본 공정서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영광군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군남면도장리에 위치한 산으로 불갑면과의 경계에 있다(고도:357m). 봉우리가 셋이라 삼각산이라 한다. 산세가 급하고 뾰족하여 곡이 사방으로 형성되어 있다. 남쪽에 대덕제가 있고 군남천의 지류인 홍주천의 발원지이자 불갑천의 지류인 건무천이 발원하는 곳이다. 『대동지지』(영광)에 "삼각은 남쪽 20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고, 『영광속수여지승』에 "삼각산(三角山)은 영광군 남쪽 20리에 있으며 모악산서록(西麓)이다."라고 표기하였다.
『호남지도』(영광)에 육창면과 외간면 사이로 앞에 불갑천을 두고 오뚝 서 있는 산으로 묘사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영광), 『대동여지도』에도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영광)에는 외간면(外間面, 현 군남면)의 구평리(九坪里) 뒤에 삼각산이 있는 것으로 수록되어 있다. [출처] 삼각산[三角山, Samgaksan]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 12.)
적자봉(433m)은 보길도의 주봉으로 산 이름은 고산 윤선도가 명명하였다. 원래 이름은 격자봉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적자봉으로 변하였다.
완만한 등산코스에 습지인 듯 칙칙한 느낌이 들지만, 능선에 올라서면 다도해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맑은 날이면 추자도, 제주도를 조망할 수 있다. 한편 적자산에는 황칠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기도 하다.
보길도의 주산이며, 해발 433m의 정상으로 큰기미계곡, 작은기미계곡, 부용리 마을에 접해 있으며 정상에서 제주도, 땅끝, 진도, 거문도, 추자도, 다도해, 남은사, 부용, 부황 마을, 주변의 작은 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정상까지 부용리 곡수당에서 출발하면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며, 중간중간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들이 있으며 황칠나무,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가막살나무 등 난대성 수종들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경치에 남해의 짙푸른 바다가 발아래 조화를 더하니 윤선도는 '선계인가 불계인가 인간이 아니로다.'라고 표현했다. [출처] 적자봉(격자봉)(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격자봉 정상
(예송리) 팬션뒤로 보이는 격자봉
난대림숲길
예송리 몽돌해수욕장
해변 길이 약 1.4km로 보길도 동남쪽에 있다. 활처럼 휘어진 모양의 해변에는 백사장 대신 검은 조약돌이 1만 5,000평 정도 깔려 있고 낮 동안 햇빛에 달구어진 조약돌이 초저녁까지 식지 않아 오랫동안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조약돌밭 뒤편에는 남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아 주는 후박나무와 소나무 등 6,700여 그루의 상록수 방풍림(천연기념물 40)이 해변을 둘러싸고 있다. 해수욕장 개장은 7월 15일부터 8월 25일까지이다. 해수욕장에서 바다낚시를 할 수 있고, 주변에 윤선도유적지와 예작도가 있다. 날씨가 맑으면 멀리 추자도와 제주도까지 보인다. [출처] 예송리해수욕장[禮松里海水浴場]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