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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300산  244차 진도 조도 신금산(神禽山)

암릉길의 조망산행
오늘의 야생화 동백

 

조도면은 진도군 7개 면 중의 한 면이며, 154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유인도는 35개, 무인도는 119개가 있다. 우리나라의 읍·면 중에서 섬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조도는 건설부고시 제478호에 의해 198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상조도 돈대산 전망대(도리산 전망대라고 한다)에 오르면 조도군도의 섬들이 마치 새떼처럼 보여 조도를 한국의 하롱베이라고도 부른다.

 

하조도의 돈대산(敦大峰·271m)과 상조도의 돈대산은 돈대(墩臺)에서 유래되었다. 돈대시설은 신금산(神禽山·238m)에도 존재하였다고 한다. 돈대(墩臺)는 일종의 성곽 시설의 하나로,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을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해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신금산 정상

 

하조도 등산지도

 

상록수길의 평화로운 산행길

 

춘란도 봄을 준비중이다

 

거북바위 모습이 압권이다

 

신금산 정상에 서서

 

어제의 산행지 돈대산과 조도면소재지

 

한국의 하롱베이라는 조도군도. 그래서인지 조도는 옛날부터 바다에 '고기 반, 물 반'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어족자원이 풍부했다. 조도는 진도의 외해에 속한 섬이라 오랫동안 고기잡이 어선이 전국적으로 가장 많았다. 해방 후 조도에 닻배(닻으로 고정한 배에서 그물을 이용한 어선) 32척, 투망 51척, 중선(중형 어선) 10척이 있었는데, 모두 100여 척 정도 있었다고 한다.

 

신금산 하산길의 모습

 

부처손도 봄을 준비중이다

<부처손>

건조한 바위 겉에서 자생하는 양치식물로 부처손은 불사초, 장생불사초, 회양초(), 권백 등의 다른 이름이 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시켜줌과 동시에 다른 곳으로의 전이를 막아주고, 그 자체를 소멸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출처] 부처손 (우수 식재료 디렉토리)

 

거북바위의 턱밑. 정면에서눈 코끼리바위라해도 될듯

 

귀여운 콩짜개덩굴

 

하조도항과 상조도군도(2006년 건교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조도대교가 보인다). 

 

서쪽으로 갈수록 동백군락지 입니다

 

동배꽃도 피고

 

동백나무숲

 

가거도 분위기나는 등대쪽 바위

 

사람형상의 바위도 찾아보고(미국의 모 대통령 모습같디도)

 

통신타워와 등대

 

<하조도등대>

등탑의 높이 12m이다. 등고는 평균해수면으로부터 48m에 이른다. 등질은 섬백광 10초 1섬광이다. 우리나라 서남해 연안 해역에서 가장 조류가 센 장죽수도(長竹水道)의 중앙에 있다. 1909년 2월 1일 조선총독부 체신국의 관리 아래 처음 등에 불을 켰다. 여수·부산-목포·군산·인천 사이를 왕래하는 1만 톤급 이하 선박의 주요 뱃길이 되는 장죽수도가 있는 곳이 하조도라 그 북동쪽 끝에 광력(光力)이 높은 유인 등대를 설치하게 되었다.
1945년 12월, 미군정청 운수부 해사국에 소속되었다. 1955년 12월, 목포지방해무청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1977년 12월, 목포지방해운항만청에 속하게 되었다. 1988년 8월, 목포지방해운항만청 항로표지관리사무소로 명칭이 바뀌었다. 1997년 5월, 목포지방해양수산청 하조도항로표지관리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출처] 하조도 등대 [下鳥島燈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영국출신의 바실홀 함장이 상조도 도리산 전망대(당시 산성)에서 조도 군도를 보고 세상의 극치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지금부터 200년 전인 1816년. 청나라 위해(威海)에 갔다가 제 나라로 돌아가던 영국 함대 3척이 이곳을 잠시 들른 적이 있다. 함대 중 리라호 선장은 지금의 상조도 도리산 전망대가 서 있는 곳에 올라 주변을 살폈다고 한다. 작은 섬들이 마치 새가 모여 있듯이 곳곳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감탄한 그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 보고서를 써서 이곳이 동양에서 항구 건설에 가장 좋은 후보지라고 극찬했다.

조도란 이름이 붙은 사연도 새가 모여 앉아 있는 모양새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가 남긴 <항해기>(1818년)엔 이런 구절이 있다. “산마루에서 주위를 바라보니 섬들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섬들을 세어보려 애를 썼으나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20개는 되는 듯했다. 경치는 황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조도에 사흘간 머물면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조도 말과 생활습관을 기록해뒀다. 자기네들 마음대로 섬의 이름도 붙였다. 하조도는 앰허스트섬, 상조도는 몬트럴섬, 외병도는 샴록섬, 내병도는 지스틀섬 등이다.

이처럼 조도는 일찍부터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탄 섬이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70년쯤 지난 1885년,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뒤엔 군사적 요충지로 조도를 중심으로 한 진도 일대를 정식으로 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만일 당시 조선 왕실이 영국에 진도 일대를 내주었다면, 지금의 홍콩이나 마카오와 같은 운명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출처] 이재언의 섬 조도

 

 

손가락바위가 조도대교 부근에서 보면 임신한 여인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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