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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300산 238차 강진 천태산

아이젠없이 떠난 산행
따스한 겨울산행

 

 

< 천태산 >

천태산(해발 549.4m)은 강진만을 굽어보고 있는 강진의 명산이다.

이곳은 산세가 깊으면서도 전망이 뛰어나고 수려한 계곡이 숨어 있는 곳이다. 정수사 좌측에 강진군에서 1995년에 시설한 사방댐이 있고 깊은 계곡이 있어 가뭄에도 수량이 풍부하여 여름철에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사방댐에서 임도를 따라가면 참나무, 편백 등이 잘 가꾸어진 초당림이 위치하고 있다.

천태산의 산행 코스는 원점회귀형으로 단순하며 정수사에서 출발하여 참나무로 뒤덮은 등산로를 따라 1시간 정도 산행을 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동북쪽 안부에 호남의 5대 명산의 하나로 꼽히는 장흥 천관산이 위용을 드러내고 남쪽으로 확 트인 장흥군 대덕읍내와 장흥만의 푸른 파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고 위험한 곳은 없으나 참나무류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 미끄러질 우려가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등산로에서 내려와 강진군에서 1994년에 시설한 임도를 통해서 정수사에 이르면 산행은 끝난다.

정수사는 천태종의 본사라고 일컬어지며 대웅전이 도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주변에 고려청자 가마터를 손쉽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는 길에 청자자료 박물관이 위치해 있어 역사기행을 겸한 산행코스로 권장할 만하다.

산로와 임도가 만나는 계곡에는 꽃무릇(상사화)이 붉게 물들어 산행객들을 반기고 계곡 상류 8부 능선에는 여름에도 얼음을 볼 수 있는 얼음골이 있다고 전한다.

[출처] 천태산(강진)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강진 방면에서의 등산로

 

정수사를 들머리로. 신라말 서기 800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정수사 뒤로 보이는 천태산 능선

 

북쪽사면에 눈이

 

새들이 바삐 움직인듯

 

천태산 정상부 이제 바다 조망이 터집니다

 

천태산 정상

 

천태산 정상표지석

 

천태산 정상에서

 

 

이웃해 있는 천관산

 

멀리 바다너머 고금도 약산도가 보이고

 

다소 투박한 소원들이 모여있고

 

상암에는 아무도 없는듯

 

임도에 후박나무 터널...

 

네마리의 사자가 받히고 있는 석탑. 입불이 모셔져있다

<정수사> 

정수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옛날에는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나 현재는 모두 없어지고 다만 대웅전과 요사채 그리고 응진당 등의 소규모 건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정수사의 원래의 명칭은 두 골짜기 계곡이 절 앞에서 합하여 흐른다고 하여 쌍계사라 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정수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신라 애장왕 원년(800)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그의 생존 연대와 맞지 않아 믿기 어렵다. 대웅전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인 공포식 맞배지붕으로 처마는 겹처마이고 양 박공 면에는 풍판을 설치하였으며, 바닥은 마루판으로 우물마루이고 후면 중앙 벽 쪽으로 불단이 설치되어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간결하며 조선 중기 이후의 건물로 추정된다.

[츨처] 정수사(강진)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조용히 흐르다 1년에 한번 솟구친다는 모수(어머니의 물)

< 모수(어머니의 물) 전설 >

이 물은 정수사 한켠에서 나오는 샘물로 오래전부터 어머니의 물이라는 명칭과 함께 마시면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샘물은 조용히 샘솟다가 1년에 한 번씩은 힘차게 솟구친다고 합니다

인근 주민들은 솟구쳐 흐르는 물을 마시면 무병장수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참여했던 한 승군이 솟구치는 물을 마시기 위해 밤낮없시 지켜보며 자내던 어느날 보름날 밤 샘물이 콸콸 솟구쳐 승군이 그 물을 마시려 했으나 샘위쪽에서 호랑이가 '어흥' 하고 나타나 못먹게 했다는 신비스런 물입니다. 이 샘물은 조선시대 승군은물론 고려시대 도공들도 마시며 건강을 기원했던 생명의 물이기도 합니다.

정수사의 삶을 품고 꿈을 품고 온 생명의 근원이 되고 있는 여기 전설의 샘물을 모수(어머니의 물)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 모수를 20m 끌어들여 여기에서 편리하게 먹도록 했습니다 

 

임진왜란 의병장 염걸 장군 전승 기적비와 선교도총 부종수교 운계천기대사 의적비가 세워져 있다

<의병장 염걸장군>

염걸 장군은 칠량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글재주가 있고 힘이 몹시 셌다고 전한다.

자라면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뛰어난 솜씨를 가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인 1592년(선조 25) 9월 왜병이 구십포(九十浦)로 쳐들어 오자 형제와 아들이 합심하여 의병을 일으켜 싸웠다.

여기에서 허수아비 수백개를 만들고 포고문(布告文)을 발사하여 왜적이 이를 보고 후퇴하자 정수사(淨水寺)에 숨어 있다가 크게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
다시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싸움에 힘써 의병장이 되었고, 몰운대 전투에서 다시 큰 공을 세워 수문장이 되었다.

그뒤 얼마 되지 않아 거제도해전에서 백병전을 펴다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고 그의 형제인 염서, 염경, 외아들 염홍립도 모두 전사하였다. 염걸 장군은 사후 선조 때 사헌대부 병조판서로 추증되었다.
[출처]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정수사 도조사陶祖祠 고려시대 청자를 굽던 옛 도공들의 위패를 모셨다. 도공들이 가마에 들기전 마음을 다잡기 위해 찾았다는 정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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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300산  252차 완주 만덕산

마지막 더위인듯 그리곤 가을이 오겠지
오늘의 야생화 닭의장풀 새며느리밥풀 사위질빵 

< 만덕산(萬德山) >

만덕산(萬德山)’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산이 커서 군사 만 명은 족히 숨을 수 있다고 하는 설과 만인에게 덕을 베푸는 산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임진왜란과 6.25전쟁 등의 전란에도 주민들이 화를 입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덕을 베푸는 만덕산의 기운 때문이라고 하였다. 향토지에 따르면 지명은 『대동지지』에 처음으로 수록된 것으로 전한다. 

 

이곡(李穀)[1298~1351]의 『가정집(稼亭集)』에 “전주 남쪽 만덕산(萬德山)에 보광(普光)이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은 바로 백제시대에 세워진 대가람(大伽藍)으로서 화엄(華嚴)의 교법을 강설한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기(李沂)[1848~1909]의 『해학유서(海鶴遺書)』[1870]에 “박한진과 전주 만덕산을 유람하고 「유만덕산기」를 짓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에 만덕산은 진안보다는 전주 남쪽에 있는 산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상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호남금남정맥의 분기점인 주화산에서 내려온 호남정맥의 첫 번째 산이다. 북동쪽 산기슭 아래에는 미륵사(彌勒寺)가, 남서쪽 골짜기 아래 상관면 마치리 정수마을의 산행길 초입에는 정수사(淨水寺)가 있다. 높이 50m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만덕폭포는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겨울철에는 산악인들의 빙벽 등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 전주~진안 간의 중요 교통로 중 하나였던 곰치재를 비롯하여 현재는 익산포항고속국도가 곰티터널을 만들어 지나는 등 교통로가 다양하다.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만덕산 정상


 

 

만덕산 산행지도 

* 산행거리 : 8.0km / * 산행시간 : 4시간 30분

 

한여름의 정수사 주차장은 무척이나 여유로운듯. / 오늘은 정수사에 차를 맡겨놓고 산행을 시작해볼 요량이다. 산행할때 주차공간만 온전해도 산행내내 마음이 편하다. 오늘이 그런 날일 것이다. 가점 10점을 얻고서 출발

 

정수사는 조계종 17교구 금산의 말사로 신라 진성여왕 2년(889)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정수사(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899년(신라 진성여왕 2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정수사라는 사찰명은 흔한 편으로, 청정한 도량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하지만 만덕산(萬德山) 정수사는 이러한 불교적 상징성 외에도 실제 만덕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청정한 물과 관련이 깊다.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 梵宇攷>에 따르면 처음에는 중암(中庵)이라고 했다가 후일 주변 산수가 청정하여 정수사(淨水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농로길을 따라 갑니다

 

산의 이름때문인지 6.25때 피해가 없었다고

 

사위질빵이 우선 반기고

 

사유지라고 통제한답니다. 조금은 씁쓸한 마음으로 좌측 우회로로 진행. 감점 10점 

 

사유지안의 집...뭐라해야할까...

 

미역풀이 수줍게

 

 

무릇 남매도 곱게 꽃을 피워내고

 

 이것이 길입니다. 다행인것은 그래도 키까지 덮지는 않았습니다

 

정비안된 산행길이 오늘 고난을 예고합니다. 여름날은 잘알려진 곳을 갑시다. 일단 지도를 믿고 진행합니다. 여름날에도 전투화급의 등산화와 군복재질의 하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기도처에는 약수도 흐르고 주변엔 커다란 감나무들과 함께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우물도 있습니다.

 

길을 헤매다가 지그재그로 산을 올라 드디어 능선에 오름. 안도의 안도의 한숨속에 이제 살았다하는 마음이 든다.(여름날엔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서도)

 

경각산 모악산 고덕산이 운무속에 자리합니다. 이 모습을 보려고 수풀속을 헤치고 왔습니다. 그 간의 노고는 이 한장으로 말끔이 씻어 집니다.

 

선각산 덕태산 성수산 능선입니다. 좌측 멀리엔 덕유산 능선이 자리합니다. 그 아래 마이산이 두 귀를 쫑긋하며 우리 얘기를 듣는듯 합니다. 저번에 마이산 서운했던 얘길 했으면 큰일날뻔 했습니다. 우린 무척 친한 사이거든요 

 

자칭타칭 만덕산의 메인 관음봉에 올라섭니다. 올라올 때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인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흑염소 무리가 나를 경계의 눈빛과 자세로 바라봅니다. 너네 영역을 침범한 사람은 나니까 사진만찍고 어서 갈것이야. 찰칵찰칵

 

관음봉의 위용. 우두산의 의상봉 필이...

 

 

만덕산은 정상봉우리가 두개라고 합니다. 오늘의 첫번째 정상 입니다.

 

새만금 포항간 고속도로. 뒤로는 운장산 능선이 보인다.

 

호남정맥의 첫번째 봉우리 만덕산에 서서

 

바위위에 작열하는 태양과 맞서는 닭의장풀. 자세히보면 신비하기까지한 이 고운색감을 절대 잃는법이 없습니다.

 

전통 한봉입니다.

 

하산 어렵게 계곡따라 내려오다 마을을 만나니 반가움이 이루 말로 형용할수 없다. 여름철 산행은 힘이 든다. 다음번엔 반대편인 동쪽계곡의 원불교만덕산 성지 쪽에서 산행을 해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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