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300산 184차 남원의 황산
고려 우왕때 이성계 장군이 왜구대군을 물리친 황산대첩의 현장
< 황산(荒山) >
높이 697m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과 아영면, 인월면에 걸쳐 있다. 기반암은 편마상 화강암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변의 분지가 침식작용에 의해 점점 깎이면서 황산은 산지(山地)로 남게 되었다.
예로부터 운봉분지(운봉읍·주천면에 형성된 분지)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지역이었는데 황산은 덕두산과 함께 남원 동부에서 서부로 넘어오는 외적을 막았던 목이었다. 황산 남사면과 덕두산 사이는 폭이 좁은 데다 남천(람천)이 흘러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황산은 1380년(고려 우왕 6) 삼도순찰사로 임명된 이성계(조선 태조)가 왜적을 대파한 황산대첩(荒山大捷)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황산 인근의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344-2번지에 사적 제104호로 지정된 황산대첩비지(荒山大捷碑址)가 있다.
[출처] 황산 [荒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황산 정상. 등산로도 희미하다


황산대첩비지..

왜장 아지발도를 이성계가 화살로 투구를 떨어트리고 이지란이 화살로 머리를 맞춰 적장을 사살 10배나 넘은 왜구를 섬멸한 황산대첩비
<황산대첩>
황산대첩은 1380년(우왕 6) 9월 이성계 등이 전라도 지리산 부근 황산(荒山)에서 왜구에게 크게 이긴 전투이다. 1380년 8월에 상륙한 왜구는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일대를 약탈한 후 전라남도 남원 일대에 집결하였는데, 이들을 추격한 고려군과 새로 증원된 이성계 휘하의 군사들이 이들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 전투로 왜구의 세력은 약화되고, 고려의 왜구대책은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교전이 이루어진 곳은 황산 북쪽의 정산봉(鼎山峰) 근처였다. 왜구는 기병을 동원하여 고려군의 후미를 끊으려 하였으나, 이성계가 친병을 이끌고 나서서 다수의 적을 사살하였다고 한다. 한 차례 전투에서 패배한 후 아지발도(阿只拔都)를 두목으로 한 왜구는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항전에 돌입했다. 아지발도는 매우 수려한 용모와 뛰어난 무용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었는데, 백마를 타고 목과 얼굴을 감싼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채 창을 휘두르며 고려군을 쓰러뜨렸다고 한다. 고려군은 이들을 상대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으나, 이성계와 이지란(李之蘭)이 협공으로 아지발도를 사살한 이후 전세가 크게 기울어 왜구를 대부분 섬멸하였다. 이때 전사한 왜구의 피로 강이 물들어 6, 7일간이나 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하며, 포획한 말이 1,600여 필이고 병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 고려사(高麗史)』 변안열 열전에 의하면, 처음에는 적군이 아군보다 10배나 많았으나 겨우 70여 명만이 살아남아 지리산으로 도망하였다고 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편제를 완성시킨 가왕 송흥록(1780~1863)의 생가
<송흥록>
남원시 운봉 출생. 8명창의 한 사람으로 가왕(歌王)의 칭호를 받았다.
판소리의 중시조(中始祖)로서 모든 가조(歌調)를 집대성하는 한편, 매부인 김성옥(金成玉)이 시작한 진양조를 자신의 노래에 도입, 완성하였다. 그의 창법은 발성초(發聲初)가 극히 신중하였고, 웅건·청담한 창법을 가진 동편제(東便制)를 이룩하였다.
특히 《춘향가》 중의 〈옥중가(獄中歌)〉와 《변강쇠타령》 《적벽가(赤壁歌)》 등을 잘 불렀다.
[출처] 송흥록 [宋興祿]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박초월(1913~1983)의 생가. 판소리 춘향가 한대목이 흘러 나온다

국창 박초월선생 동상

국악의 성지 전시관의 옹기들

국악의 성지 전시관

황산정. 국궁장 황산자락에 걸맞는 시설이다

운봉읍내와 들판이 보인다. 500m대의 고원지대로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지(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10곳) 이다

황산 정산

삼봉산 서룡산 능선

덕두산 바래봉 능선

지리산 천왕봉 능선이다

황산의 이미지처럼 힘겨우면서도 치열한 삶을 보여준다

날머리 서무마을의 명품소나무

동편제마을 비전마을의 솔숲

(빌려옴)피바위. 황산대첩때의 왜구의 피가 온하천을 물들였다는..
고려 우왕은 이성계를 삼도도순찰사로 임명하여 왜구퇴치를 맡겼고, 이성계는 황산에서 왜장 아지발도를 사살하고, 왜구를 대파했다. 이때 달아나는 왜구를 밤새 섬멸하느라 피가 강처럼 흘러 바위를 물들였다 하여 피가 물든 바위를 ‘혈암(血巖)’이라 불렀고 현재에도 ‘피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빌려옴)하지만 철분성분이 많아 나타난 자연현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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